문제를 축소하려는 사람은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에게 우선순위를 강요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일은 동물 문제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일어난다. (p.50)
어떤 자연사는 가장 비참한 죽음이라는 것을, 어떤 안락사는 고통사라는 말과 동의어라는 것을, 어떤 입양은 죽음으로 가는 급행열차라는 것을, 언어들은 알려주지 않는다. 그 대신 저 언어들은 현실에 엄연히 존재하는 고통을 은폐한다. 그래서 모든 보호소가 인도적인 장소라고, 모든 유기동물이 마지막 순간만큼은 편안하다고 믿게 만든다. 언어와 현실이 동떨어져 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바꿔야 할까. 언어? 아니면 현실? (p.144)
(...) 그래서 농장동물이 당하는 가학 행위에는 침묵하는 반면 개식용에 반대하는 사람은 위선자라고 비난한다.
어차피 우리의 일상이 동물의 고통을 전제한다면 고통받는 동물의 종 따위는 상관없다는 사고방식이다. 무엇보다 동물과 관련해 완벽한 실천주의가 되지 못할 바에는 실천주의가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비난하는 편이 차라리 일관성 있다는 입장이다. (p.2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