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엔 이런 면 음식을 즐겨 먹었다. 세 끼 중 한 끼를 꼭 면으로 해결할 정도였다. 면은 여전히 좋아하지만 이제는 먹고 나서가 문제다. 좀처럼 소화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더부룩한 배를 어루만지고 이리저리 걸어 다니고 잠자리에 들었다가 다시금 몸을 일으키는 짓을 얼마나 반복해야 하는지. 즐거운 일들을 하나씩 잃어 가는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말이다. (p.8)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다수라는 게 위로가 되진 않는다. 오히려 내 딸이 그런 부류에 속해 있다는 사실이 내게는 매일 충격적이고 놀랍다. 그래서 매번 똑같은 강도의 실망감과 죄책감으로 다가온다. 어쩌면 딸애는 공부를 지나치게 많이 했는지도 모른다. 아니, 불필요한 공부를 내가 너무 많이 시킨 걸지도 모른다. 배우고 배우다가 배울 필요가 없는 것, 배우지 말아야 할 것까지 배워 버린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세계를 거부하는 법. 세계와 불화하는 법.(p.32)
이 애들은 세상을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정말 책에나 나올법한 근사하고 멋진 어떤 거라고 믿는 걸까. 몇 사람이 힘을 합치면 번쩍 들어 뒤집을 수 있는 어떤 거라고 여기는 걸까. (p.51)
이런 순간 삶이라는 게 얼마나 혹독한지 비로소 알 것 같다. 하나의 산을 넘으면 또 하나의 산이 나타나고 또 다음 산이 나타나고. 어떤 기대감에 산을 넘고 마침내는 체념하면서 산을 넘고. 그럼에도 삶은 결코 너그러워지는 법이 없다. 관용이나 아량을 기대할 수 없는 상대. 그러니까 결국은 지게 될 싸움. 져야만 끝이 나는 싸움.(p.91)
언제 갑자기 손님이 오실지 모르잖습니까.
장례식장 관리자에게 들은 대답은 그게 전부다. 죽어서도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삶. 그런 건 이제 별로 놀랍지도 않은 일이다. 어디서나 흔하게 목격하는 일 중에 하나다. (p.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