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과는 40명이었지만 모두가 강의에 출석하는 건 아니었다. 빨리 적응한 애들은 자신들이 대학 생활에 적응하지 못 한다는 이유로 자주 수업에 빠졌다. 그런 이유라면 나 역시 충분한 조건을 갖췄지만 나는 학교 수업에 빠짐없이 들어갔다. 일단 기숙사에서 나와야만 혼자의 생활이 시작되기 때문이기도 했다. 혼자라는 건 어떤 공간을 혼자 차지하는 게 아니라 타의의 시선에서 벗어나 익명으로 존재하는 시간을 뜻하는 거였다. (p.84)
나는 맞은편의 본관 건물에 무심히 시선을 두고 있었다. 강의를 마치고 건물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학생들 사이에 청소 아줌마의 모습이 보였다. 분필 가루가 두껍게 압착된 칠판지우개를 들고 나와 터는 중이었다. 순식간에 흰 가루가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뿌옇게 허공을 덮었다. 학교 복도에서 저런 걸 입에 물고 벌을 받던 게 오래전의 일만 같았다.
그렇다고 멀리 떠나온 것 같지도 않았다. 여전히 나는 무력하고 방어적인 회색지대에 갇혀 있었다. 나 자신이 실망스럽고 그러다 보니 의욕이 없어 방치하게 되고, 결국 해야 할 것을 제대로 못 해 무력감에 빠지고, 무력감은 쫓김과 불안을 낳고 그래서 자신감을 잃은 끝에 제풀에 외로워지고, 그 외로움 위에 생존 의지인 자존심이 더해지니 남들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하고, 그러자 곧바로 소외감이 찾아오고, 그것이 또 부당하게 느껴지고, 이 모든 감정이 시간 낭비인 것 같아 회의와 비관에 빠지는 것, 그 궤도를 통과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이른바 청춘의 방황만이 아니었다.
지난 두 달 동안 나는 내 앞의 문을 열지 못하고 번번이 과거의 나로 굴러떨어지곤 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 세계의 부당한 규율에 복종했던 미성년 그대로였다. (p.86)
내 이름이 불리고 전화 부스 안으로 들어가 수화기를 들었는데 나는 전에 없이 엄마에게 말을 더듬고 있었다. 통화 요금이 계속 올라가고 있었지만 엄마는 기다려주었다. 나는 예상대로의 용건을 말한 다음 추석에 집에 내려가겠다는 말을 충동적으로 덧붙였다. 왠지 모르지만 인생이 커다란 감옥 같았고 거기에는 미래라고 이름 붙일 만한 출구도 없는 듯 했다. 과장된 절망의 포즈에 빠진 나머지 나는 퇴행적인 노스탤지어로 달아나야 했을 것이다. (p.242)
비관은 가장 손쉬운 선택이다. 나쁘게 돌아가는 세상을 저항 없이 받아들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에너지가 적게 소모되므로 심신이 약한 사람일수록 쉽게 빠져든다. 신체의 운동이 중력을 거스르는 일인 것처럼, 낙관적이고 능동적인 생각에도 힘이 필요하다. 힘내라고 할 때 그 말은 낙관적이 되라는 뜻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낙관과 비관의 차이는 쉽게 힘을 낼 수 있는지 아닌지의 차이인지도 모른다. 역설적인 점은 비관이 더 많은 희망의 증거를 요구한다는 사실이다. 어둡고 무기력하게 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비관을 일삼는 사람이야말로 그것이 깨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래서 자신 같은 비관론자도 설득될 만큼 강력한 긍정과 인내심을 요구하게 되고, 결국 유일하게 그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랑하는 사람을 괴롭히게 된다. (p.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