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에 담긴 문장들이 가슴을 묵직하게 울리는 이유는 작가 박경리의 삶이 문장 속에 그대로 녹아있기 때문이다. 박경리 선생은 남편과 어린 아들을 먼저 떠나보내야 했고, 사위인 김지하 시인이 옥에 갇혔을 때는 어린 손자를 포대기로 업고 글을 썼다고 한다. 암 수술을 받는 몸으로, 시시대의 감시와 서러운 따돌림 속에서도 원고지를 채워나갔다. 600명이 넘는 수많은 인물 하나하나에 숨을 불어넣을 수 있었던 것은, 작가 스스로가 인생의 가장 슬픈 순간들을 온몸으로 견뎌내며 인간을 깊이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이 필사집은 『토지』를 다 읽지 않은 사람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147개의 인생 문장을 골라 담겨있다. 복잡한 줄거리나 상황 설명은 빼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삶', '사랑', '감정' 같은 주제로 나누어 놓았다.
어려운 고전을 공부하는 느낌이 아니라, 오늘 나에게 찾아온 문장을 다정하게 마주하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어떤 역경 속에서도 삶 자체가 존재하며 그것이 흐르고 있다는 것은 아름다웠다" 같은 문장을 손으로 한 자 한 자 따라 적다 보면, 마음속에 맴돌던 답답한 감정들이 정리되고 따뜻한 위로를 얻게 된다. 눈으로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글과 달리, 직접 펜을 들고 써 내려가는 시간은 박경리 선생이 겪어낸 삶의 지혜를 내 것으로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책은 필사하기 좋게 실제본으로 되어 있어서 좌악 잘 펼쳐진다. 꼼꼼하게 잘 만들어진 책이라 더욱 만족한다.
『토지』라는 거대한 산이 너무 높게만 느껴졌는데 이 필사집으로 쉽게 읽어 나갈 수 있어서 거부감이 덜하다. 거창한 문학 작품을 읽는다는 부담감은 내려놓고, 하루에 딱 한 문장씩 손으로 따라 쓰며 지친 마음에 쉼표를 찍어주기에 더없이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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