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1
J.M 바스콘셀로스 지음, 박동원 옮김 / 동녘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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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는 어릴 적에 한 두번 읽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지금 보는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는 또다른 미소와 아픔과 그리움을 자아낸다. 영화를 보는 내내 환히 웃으며 봤다기 보다는 잔잔한 미소와 더불어 눈물 범벅인 채로 가슴을 쓸어 내렸다.

실직한 아버지, 아픈 엄마, 큰누나, 작은누나 고도이아, 형 또토카, 동생 루이스, 세대를 거르는 친구이자 여섯 살 내내 다정함을 알려준 뽀르뚜가(마누엘)아저씨, 그리고 라임 오렌지 나무···

-아낌 받는 존재가 된다는 것, 그것은 살아있음의 증거이며 삶의 증거이다. 하지만 그 아낌의 첫 째는 자기 자신임을···  그걸 깨닫는 것이 난 왜 이리 오래 걸렸을까···

-자연에, 시간에, 주위 이웃들에게 언제나 아낌을 받고 살려지고 있는 존재인 나, 익숙함에 당연시되고 잊혀져 버리는 수많은 일상···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기대하는 맘은 커지고 바라는 것도 많아져 그 소망이 깨어질라치면 실망도 배가된다. 비교하는 습성, 그 누군가 보다는 내가 조금 더 갖기를, 더 사랑받기를 원하는 이기적인 습성또한 자연의 순리이며 흐름인 것을···결국 이 모든 사실을 간과하고 자책과 자학으로 생을 보내는 이가 적지 않음을······

-여행, 떠나고 싶은 충동, 이것은 나의 독립과 새로운 체험을 하기 위함이며, 더 진화된 자기 자신을 만들기 위해 생기는 고대부터 내려온 유전자의 기록임을······

"다들 날 때려요. 아빠가 먼저 때리니까··· 근데 괜찮아요. 아빠는 내가 죽일 꺼에요." - 제제

"뭐? 아빠를 죽인다고?" - 뽀르뚜가 아저씨

"마음으로요. 누군가를 미워하면 그 사람은 마음에서 죽어가죠." - 제제

"그렇구나······." - 뽀르뚜가 아저씨

-내가 가지는 피해의식이 얼마나 많은 이에게 가해를 하는지, 그들의 희망을 꺾는지 알아야 한다.

제제 아빠처럼···

-찢어진 외상을 마취없이 꿰매어도 미동도 하지 않던, 울지 않던 제제가 뽀르뚜가 아저씨의 죽음으로 인해 실신을 한다. 정신이 강한 아이 제제, 그러나 지금은 울고 있는 제제, 사고도 더 이상 치지 않고 꼼짝하지 않으며 삶을 포기한 사람처럼 조용하게 멍하니 ···

어린아이 제제는 나와 다르다.

난 사고를 치고선 야단맞지 않기를 바라지만, 제제는 사고를 치든 안치든 그것에 대한 책임을 진다. 야단 맞을 각오를 하고 친다. 자신이 한 일?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여섯살 아이 제제······

왠만한 어른보다 낫지 않은가?

나보다 더 훨씬 나은 실험가이자 망상가이며 멋진 상상가인 실천가 제제!!!

​아~ 제제같은 창가의 토토같은 어린 친구하나 있으면 참 좋겠다 싶다. 어딜 가야 찾을 수 있을까?

-너무 빨라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들은 글이나 생각(상상)으로 볼 수 있다. 영화속의 생각들은 눈으로 볼 수 없다. 생각이 부족하면, 상상력이 부족하면 그 형태나 이미지만 보여질 뿐 그 내면은 읽어내지 못한다. 말하지 않고, 글(자막)로 나타나지 않으면 더더욱 알아채기가 힘들다.

눈에 보이는 행동이나 이미지에서 내면을, 그들의 생각을 읽어내는 능력. 그것은 수많은 경험과 책읽기와 쓰기를 통해서 배양되는 것 같다.

-빠른 걸 좋아하는 우리들, 눈으로 본다는 것, 빛이 있어야 눈으로 볼 수 있듯이 눈으로 본다는 것은 빛을 따라가는 것, 곧 빛의 속도를 쫓는 것이다. 하지만 그 속도는 너무나도 빨라 쉽게 놓친다. 핵심만 줄기차게 쫓는 꼴이다. 그러니 정작 중요한 핵심의 중간과정은 그냥 지나치고 만다. 영화가 그렇다. 왜 영화는 책처럼 세밀하게 깊숙한 내면까지 도출하지 못하는 걸까?라는 의문은 여기서 멈춘다. 영화가 표현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내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함을 알기에···

그 알아차리지 못하는 이유는 두가지 정도가 될 것 같다.(나의 생각)

빛의 속도로 지나가는 영상을 눈이, 뇌가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하나이고,

너무나도 익숙해진 일상이 포함된 특정이미지를 그냥 쉽게 지나쳐

못보고 지나가 버리는 것이 또 하나이다.

-깊숙한 내면을 볼 줄 아는 눈을 가진다는 것, 참 힘든데 여섯살 아이 제제는 이미 갖고 있다.

아마 나도 여섯 살 즈음에는 제제의 눈을 가지고 있었겠지? 그런데 지금의 난 그 눈을 어디서 잃어버린 걸까? 어디다 놔두고 잊어버린 걸까? 다시 그 눈을 찾으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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