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시골의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
프란츠 카프카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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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또는 외계의 그 무엇)의 영역이었던 "변신"능력이 인간에게 일어나다니...

(그리스 신화,진화된 외계 생명체)
그것도 더 진화된 "변신"이 아니라 하등하다고 생각했던 흉칙한 벌레로...
1859년 "종의 기원"이 발표되면서 진화론에 떠들썩했던 당시 시대적 상황속에 오히려 진화에 역행하는 벌레로의 변신은 무엇을 얘기하고자 한 것일까?
(카프카 자신마져도 "<변신>은 만족할만한 소설이었다"라고 한다.)
절망, 소통의 부재, 이기심의 끝, 오만, 욕망, 휴식, 자유의지, 용기, 무상, 노동, 희망...
나만의 핵심요약을 해보긴 하지만······

며칠 동안 '변신'이라는 단어에 심취?해 있다가 나만의 해답을 조금씩 발견했다. 어제 혹성탈출[반격의 서막]을 보던 차, 인간들에게 벌어지는 역진화를 보았다. 그 역진화의 이유는 과학문명과 자본주의 였다. 끊임없이 성장과 발전만을 이루려는 인간들에의해 자연이 훼손되었고 차츰 진화한 질병으로 사상자가 늘어만 갔다.그나마 그 질병에 면역력이 있는 인간들만 살아남게 되었고, 알츠하이머 약물테스트로 탄생한 시저와 그의 유인원들과 대치를 한다. 역진화는 거기서 부터다. 전기도 전구도 차량도 돈도 필요치 않은 유인원들, 그들에겐 더이상 필요한 것도 없고 잃을 것도 없다. 그러나 인간들은 달랐다. 지금까지 누리고 살아온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혀 회상과 절망만이 있을 뿐이었다. 과학문명(과학의 도구와 기술·에너지)과 자본주의(돈과 자유)에 길들여졌던 그들에겐 낙심과 욕망밖에 없었다. 과학문명도 없고 자본논리도 없는 문맹의 유인원들에게 뒤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레고르는 자본주의의 피해자이다. 쉼없이 일해야만 했고, 가족이라는 무거운 짐에 버티다 못해 벌레로 변한 뒤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자기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맡긴 채 달렸던 그레고르는 벌레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 일과 가족의 미래에 대한 생각에 여념이 없었다. 자신의 삶이 없다는 것, 자본주의가 놓은 깊은 덫에 걸려 자신의 삶이 없는 끌려가는 인생이었던 그레고르...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한 뒤 진짜 변신한 것은 그의 가족들이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이 일을 시작한 것이다. 카프카는 자본주의의 병폐와 노동의 중요성을 어필하기 위해 변신이라는 테마를 썼지 않았을까? 그리고 누군가(자본주의·일·가족등등)에 의해 끌려가는 삶이 아니라 자신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기를 바랬던 것은 아닐까? 종속적인 삶이 아니라 내 자신이 스스로 주인이 되는 삶 말이다.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서로 자기주장이 달라서 곤욕을 치르는 경우가 생기다 보니 컴퓨터와 대화하고 과다한 업무에 의한 스트레스를 기계(로봇)에게 힘든 일을 전가시킨다. 애니매이션 영화 [월E]를 보면 미래의 인간이 나오는데, 그 모습들이 가관이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씻는 것마져도 로봇들이 모두 챙겨주니 인간들의 몸은 비대해지고 걷는 것마져 퇴화되어 개인용 비행선 없이는 꼼짝 못하는 갇힌 세계에서 산다. 왠만하면 꼼짝하지않거나 덜 움직이고 좀 더 많은 걸 원하는 현실 세계, 우리의 미래는 그레고르가 변한 벌레보다 훨씬 더 하등한, 꼼짝하지 못하는, 움직이지도 못하는,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게 아닌 요상한 그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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