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일 - 출근, 독립, 취향 그리고 연애
손혜진 지음 / 가나출판사 / 2020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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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재미난 책 소개와 [좋아하는 일을 계속해보겠습니다]로 좋은 기억이 있는 키미앤일이의 그림과 가나출판사라는 말에 한 치의 망설임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큰 기대 또한 하진 않았다.

그냥 지금을 사는 요새 정말 많고 많은 그런 일상 이야기, 위로 뭐 딱 고정도의 책! 이라고 생각했다


분명 작가의 이야기인데,

이건 마치 얼마 전 본 트루먼 쇼의 짐캐리가 된 것 같은...

어딨냐 CCTV!

으이구 또 이러고 있다.

최근에 고집 센 헛똑똑이의 잣대로 매번 얻어맞으면서도 이 버릇은 고치질 못하고 있구나. 쿨럭-


[나의 직장 생활]

때려치우고 싶은 회사임에도 출근하는 이유는 있다-

아직까진 퇴사의 이유보다 존버의 이유가 더 많기에 난 매주 5일 출근을 하고 있다.

2개월 전 퇴사자의 발생으로 그 일이 고스란히 내 업무에 깜박이도 없이 난입을 했다. 

이건 저랑 안 맞는 거 같아서 그만두겠다던 내게 일이나 잘하고 그런 말 해라던 대표의 말이 떠오르는군. 젠장.

웃픈현실이 너무나 똑같아서 머리에 꽃단 동네 언니처럼 실실 웃음이 자꾸 비집고 나온다.


작년 4월 회사의 큰 행사인 전시회를 잘 마치고 전시회서 가져온 화분에 물을 주기 위해 그 무거운 화분을 옮기다가 삐끗했는데 걷기가 힘들어 간 병원에서 경미한 디스크 증세라는 진단을 받고 진통제를 맞으며 입원을 했다.

그리고 회사에서 몸 약한 직원은 원치 않는다는 말과 함께 산재 + 퇴사 콤보 세트를 받았다.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원망하고 자책하며 한겨울에 갇혀있던 나는,

병원 다니느라 눈치 볼 거 없고 나라에서 주는 급여 받으며 병원 치료를 받다 보니 그제야 봄이 눈에 들어왔다.

그 당시에는 분노로 가득했던 상황이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산재처리 당한 게 어쩌면 나은 일이었던 거 같다

덕분에 다시 일할 수 있게 되었으니-

평생 한 곳에서 일하는 게 아니라면 어디를 가나 그 구역엔 쓰레기나 떠라이가 한 명쯤은 만나게된다.

한 명이면 감사하며 살자 두 명 아닌 게 어딤 그리고 그 떠라이가 내가 아닌 것도 감사하자 크큭-

지나간 이름을 떠올리다 혼자 히죽거렸다-

그러다 이내 다시 생각해보니 그렇게까지 쓰레기였나싶다. 역시 시간이 약이다. 망각의 축복은 참 감사할 일이다.

뭐지? 이 마음? 낯설다 너-

내 한 달을 책임져 주는 밥줄이 지겨워 새로운 밥그릇을 찾을 수밖에 없다.

이직따윈 겁나지 않지만, 이직을 위해선 참으로 귀찮고 번거로운 면접이란 퀘스트를 수행해야 한다.

이 글을 읽다 순간 난 작가 앞에서 발가벗겨진 기분이었다.

10년 후에 지금 이 시각을 시간은 있었으나 내가 안 함으로 후회하는 멍청한 짓을 덜하자-


에헤~ 고등학교 이유로 먹는 건 줄 알았던 위치에너지를 검색창에 집어 넣게 만드시네

독립심과 자신감과 반항심이 자신의 기량을 한껏 뽐내던 대학 시절에도 난 독립 같은 건 생각해본 적 없다.


이유는 단하나!!

생존의 위기가 걸린 문제라는 거~


그래서 혼자 사는 친구들이 집에서 밤을 새고 술자리 할 때 딱 고 때 빼고는 부럽지 않았다.

장여사 말대로 영국 신사처럼 살 수 있는 내 집..[빈대 주제에 하하하…. 하하…. 하….]이 있으니깐!!

잦은 이직으로 직장인일 때보다 백조일 때도 많았지만 날 아직도 생존케 준 장 여사와 우리 집이 새삼 고맙다.

그러고 보니 난 이 책을 읽을 자격이가 없었네-

어른의 일 중 독립은…그리고 다른 의미의 독립도 내 계획엔 없단! 후후

독립은 시러요-

같이 살게 해주십쇼!! 되도록 지금보다 더 사부작거려보겠숨돠 굽신굽신

손작가님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먼가 낯설지 않은 익숙한 말투다-

매우 내가 선호하는 형태의 후후 그래서 방탄소년단은 그저 세계에 진출한 한류 중 가장 성공한 연예인 정도로만 알고 있던 내가 영상을 찾아 보았다-

아무래도 이 영상만으론 입덕하기엔 부족하지만, 많은 사람이 열광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난 잘 모르겠는데?

그러고 보면 어릴 땐 뭘 하고 싶은 게 없었던 거 같다. 꿈도 없었다.

몇 년 전 취업패키지를 신청하고 직업상담을 받았는데 슨상님 말씀이 그동안 하고 싶은걸 못해서 하고 싶은 게 많은 거 같다며 후후 상담사가 아니라 용한 점쟁이였다니?


30살이 되든 해, 첫 해외여행을 시작으로 슬슬 그동안 숨겨왔던 나의 자기 계발 본능이 깨어났던 거 같다.

덕분에 한 달, 한 달을 카드의 노예로 살 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뭐가 내 취향인지 단호하게 말을 못 하겠다.

아직도 난 한창 하고 싶은 게 많은 나이라서 피식-



욕을 인사처럼 주고받던 남자 사람 친구가 있었다.

내가 연애하고 싶다고 소개팅을 강요할 때마다 그 친구가 그랬다. 넌 주변에 남자가 너무 많아.

그래서 안 생겼군.

내 생일, 내가 열받는다고, 심심하다고, 영화보자고 연락하면 나오던 남자 사람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그 친구의 마음은 끝내 확인하지 못했다. 그리고 영원한 친구를 외치던 그 친구는 유부남이 되었다. 

그래서 안 생겼어.

맘에 드는 어린 남자 사람 친구가 생겼다. 근데 왠지 그러면 안 될 거 같았다.

그 친구가 청첩장을 내밀던 날, 근데 그거 알아요? 내가 누나 좋아했던 거?

그래서.......지금도.........

연애는 하고 싶은데 결혼 생각이 없다는 나에게 친구들이 묻는다. 왜 ? 실패할까봐?

아니...남의 집 귀한 자식 데려다 지옥 구경 시키기 시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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