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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용환이삼촌 ㅣ 눈높이 어린이 문고 60
이성자 지음, 박지영 그림 / 대교출판 / 200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마음의 빗장을 풀어주는 마법의 손
-이성자의 『내 친구 용환이 삼촌』을 읽고.
임지형
1.시작하는 글
동화(童話)는 동화(同化)이다.
가끔 좋은 동화 한편을 읽고 나면 느껴지는 생각이다.
동화(童話)의 사전적 의미는 어린이에게 들려주거나 읽히기 위하여 지은 이야기이다. 동화(同化)의 사전적 의미는 본디 질이 다른 것이 감화되어 같게 됨 이다. 그렇다. 좋은 동화란 모름지기 어린이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본디 질이 다른 것이 감화 되어 같아지는 것이다. 그건 문학이 추구하는 효용성과도 맞물린다.
나는 가끔 나 자신에 대해서 ‘거꾸로 인간’이라는 지칭을 한다. 많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행하거나 추구하는 일들을 늘 거꾸로 하기 때문이다.
우선으로 독서편력을 봐도 그렇다. 초등학교 때는 아이들이 읽는 동화는 거의 읽지 않은 것 같다. 주로 위인전이나 어른들도 이해하기 힘들다는 세계명작고전을 읽었고, 중학교 때는 주로 철학책을 읽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시건방지다. 그땐 철학책이 아닌 소설이나 시를 읽는 사람을 보면 굉장히 무식해보였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이나 시는 고등학교 갈 때까지도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렇게 해서 동화를 알게 된 건 서른이 훨씬 넘어서였다. 시건방을 떨었던 중학교 시절도 한참 지나고, 고등학교, 대학을 다닐 이십대도 훨씬 넘어선 나이인 삼십대. 그러나 그 시기에라도 동화를 만난 건 내겐 큰 행운이었다. 동화를 읽으면서 비로소 내 안의 자라지 못한 아이 하나가 조금씩 커나가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동화(童話)가 동화(同化)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동화는 내 삶의 한 정점에서 성장의 발단이 되었고, 그 발단의 도화선에 선 작품이 바로 이성자의 『내 친구 용환이 삼촌』이다.
2. 상처로 인해 채워진 마음의 빗장을 열다.
20세기 심리학자들, 특히 지그문트 프로이트, 카를 융, 부르노 베텔하임등은 동화의 요소들을 ‘보편적인 공포와 욕망의 표현’으로 해석했다. 그 말은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아픔과 상처는 그러함 속에서 형성된다는 뜻일 것이다. 그건 아이들의 삶도 별개가 아닐 것이다.
모든 삶의 아픔이나 고통은 대면하기 두려운 공포와,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욕망으로 생겨난다. 그 이면은 주로 일차적인 가족 간에서부터 사회적으로 연결된 인간관계속에서 형성된 것이다. 동화에선 다 성장하지 못한 아이들 이야기임으로 가족으로 국한 시켜 이야기 해보고 싶다.
어버이와 자식, 형제자매, 부부등 혈연과 혼인 관계 등으로 한집안을 이룬 사람들의 집단. 가족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그렇다면 21세기인 현 시대에서도 가족의 의미는 꼭 이러할까? 꼭 그렇지만 않은 것 같다.
혈연, 혼인 관계가 아니어도 한 집에서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일은 흔하다. 『내 친구 용환이 삼촌』이나, 『천사의 집』에 나오는 사람들, 그리고 『내 친구 김재영』의 재영이가 그렇다. 그렇다면 그들에겐 혼인관계로 파생된 가족이 없을까? 그렇지 않다. 다만 경제적인 문제로 혹은 신체적인 문제로, 부모에게 버림받은 문제로 혼인관계로 만들어진 가족이 아닌 한 집안에서 동거하는 개념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그들에겐 그 시점부터 아픔과 상처가 생긴다. 그건 하나의 빗장으로 연결된다.
우선 『내 친구 용환이 삼촌』을 본다. 용환이는 나와 같은 반이다. 3학년이지만 키도 작고, 공부도 늘 내 도움을 받는다. 증조할머니 때문에 처음엔 삼촌이라는 호칭을 썼지만, 그 호칭도 맘에 들지 않아 하지 않는다. 물론 용환이도 원치 않았다. 때론 그런 용환이 때문에 창피하기도 하다. 그런 용환이와 한 집에 살게 된 이유는 용환이 아버지인 막내 할아버지의 사업 실패 때문이다. 갑자기 불어난 식구로 인해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막내할아버지가 술을 먹고 상스런 욕을 할 땐 불안감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리고 끝내 엄마와 싸움을 하고 난 막내 할아버지는 용환이만 우리 집에 남겨 둔 채 다른 곳으로 떠난다.
그때 늘 나보다 뒤쳐졌다고 생각했던 용환이는 정말 삼촌이라도 된 냥 의젓하게 막내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보낸다. 그 모습에 알게 모르게 용환이와 나 사이에 그어졌던 빗장이 풀려나간다.
『내 친구 김재영』은 읽고 난 후 참 가슴이 시렸다. 어린 아이로서 감당하기 힘든 부모의 부재로 인해 아이에게 드리워지는 상처가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미혼모인 엄마는 재영이를 낳은 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려 재영이는 친척 집에 맡겨진다. 재영이에겐 부모의 집이 아닌 친척집은 눈칫밥을 먹기에 충분한 환경적 조건이다. 그리고 그 상처들은 냄새 맡기의 습관을 만들어낸다. 가끔 그 냄새 맡기로 인해 사람들이 멀리하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 내가 재영이를 싫어했던 것도 내게 들이대며 냄새를 맡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영이의 그런 행동은 자신을 보호하는 하나의 빗장이었다. 자신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들을 구분하고, 그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기 위해선 냄새로 판별해야했기 때문이다.
‘나를 싫어하는 냄새라는 걸 느끼는 순간, 나도 모르게 빵을 들고 나와 버렸어.’-p.145
결국 그러한 일은 나쁜 행동으로 연결되었고, 오해가 쌓이게 되는 시발점이 되기도 한다. ‘재영이는 마음속에 있는 말을 한 번도 털어 놓지 않는다.’- p.146 그리고 빗장은 재영이에게서 말을 빼앗기도 한다. 하지만 그 빗장 또한 나에게 편지를 씀으로 인해서 서서히 풀어나가려는 의지 표명이 보인다.
『천사의 집』은 장애우들을 바라보,는 내 마음의 빗장 이야기다.
나와 다른 열악한 신체적 조건을 가진 천사의 집을 고모와 함께 방문한다. 할머니에겐 혼기를 놓친 골칫덩어리인 고모지만, 천사의 집에선 그야말로 진짜 엄마처럼 봉사를 한다. 그런 모습을 한곳에서 지켜보던 내게 고모는 동화책 한 권을 쥐어주며 전신장애를 지닌 장애우에게 읽어주기를 권한다. 그리고 나는 그 아이를 통해 나를 자꾸만 놀리는 친구에 대한 미움의 빗장을 풀기 시작한다.
‘대문은 잠겨 있지만 사람들의 마음만은 언제나 활짝 열려있죠.’ p.164
또한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빗장들을 천사의 집 대문으로 작가는 심중을 표현하기도 한다.
3.마무리 하는 글
세상은 누구에게나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어린이들에겐 그 호락호락하지 않음이 더할 수도 있다. 그건 신체적 조건에서 비롯된 나약함 때문일 수도 있지만, 경험부족으로 인한 대처능력이 떨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른들은 그 어린 시절을 겪으며 경험으로 상처를 치유하는 능력을 스스로에게 길들인다. 거기에 문학의 힘은 대단한 가치를 부여하기도 한다.
어린이들에게도 그 문학의 힘은 예외가 아니다. 특히, 내 이야기 같은 생활동화는 보이지 않는 선생이자 친구가 되어 내 마음을 헤아려 주는 느낌을 갖는다. 나만이 겪는 아픔이, 나 아닌 다른 누군가도 겪고 있다는 동질 의식이, 아픔과 상처를 이겨내게 만드는 원동력을 가지게 한다. 거기에 보이지 않지만 단단하게 채워진 빗장을 풀게 하는데 에도 동화의 힘은 크다. 『내 친구 용환이 삼촌』엔 빗장을 풀어주는 마법의 손이 들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