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양들 1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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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의 마지막 7, 네 번의 살인사건이 일어났고, 마티아스의 지하 감방으로 한줄기 빛이 들었다. 형으로 시작하여 벌로 끝나는 그의 이레는 그의 삶 전체가 감옥과도 같다는 은유일까. 혹은 너무 단순한 죄와 벌, 속죄와 용서의 체계속 흰 양들의 삶을 경멸했던 어느 들개의 회개일까.

 

많은 사람들은 기적을 원한다. 눈에 보이는, 혹은 영적으로 느껴지는 기적이 일어난다면 바쳐질 재물과 삶들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기적의 존재 자체조차 믿지 못할 생의 기원을 가진 이도 살아간다. 자신의 이름까지 경멸했던 마카베오 마티아스, 그는 기적을 믿지 않았다.

마티아스는 졸부 혹은 영웅이 되고 싶지 않은 인물임에도 그의 우두머리와도 같은 조나단에게 복종하고 가장 먼 곳에서 정답을 찾아내며 가장 낮은 곳에서, 그곳을 위해 피를 묻힌다. 단지 살아남고자도살꾼 혹은 밀정, 사기꾼, 포주, 검투쟁이에서 로마 군졸, 살인자가 되기도 서슴지 않는 자에게 살아남음, 삶이란 대체 어떤 의미일까. 예수와 그의 제자들, 즉 기적을 믿고 따르는 자들이 그 의미를 극명하게 비추고 있었다. 누군가의 평범한 가족으로, 한 명의 사람으로 존재함이 마티아스에게는 결국 용서이자 기적이었음을.

 

집필 기간만 12년이었다고 들었다. 처음 별을 스치는 바람을 읽고, 고등학교 도서관에 구비되어있던 이정명 작가님의 전작을 모두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만큼 작가님에 대한 인상이 강했던 덕에 예루살렘을 배경으로 한 이번 신작이 더욱 놀라웠지만, 이내 아주 오랜만에 가는눈으로 인물과 추리내용을 메모해가며 읽을 만큼 빠져들었다. 성경과 로마의 미트라교부터 플라톤의 4원소론까지 넘나드는 이 추리소설은 가히 역사 종교 철학을 종횡하는 지적 미스터리라고 불릴만했다.

( 다만 성경의 기록을 기반으로 한 소설이라고 하더라도, 여성인물들이 수동적이고 부수적인 역할로만 쓰인 것은 아쉬웠다. 애정하는 캐릭터인 바람의 화원윤복을 생각하면 더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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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제본)p136-137 “도대체 뭐가 은혜롭다는 거죠?”

소금에 절인 작은 생선과 마른 보리빵은 가장 가난한 자의 양식을 5천 명이 나누어 먹었다는 거야. 그 아이는 자신의 보잘 것 없는 음식이 특별한 기적에 쓰였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어.”

 

p239 마티아스는 지금껏 보이는 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했다. 눈으로 보는 것에 근거해 진실을 좇아야 감춰진 것이 드러나고 숨은 것이 보인다고 믿었다. 그러나 볼 때마다 다르게 보이는 눈이라면 그것을 어찌 믿는단 말인가? 하물며 자신이 보고 있는 것조차도 믿지 못하는 바에야.

 

p353 모든 것이 천천히 움직였다. 긴 오후가 흘러가고 있었다. 마티아스의 짧은 삶에서, 비루한 인간들의 긴 삶에서, 그중에서 가장 긴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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