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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 히비스커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평점 :
어떤 아이는, 아니 어떤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자신의 웃음소리가 얼마만큼 높고 커질 수 있는지를 알기도 전부터 소리죽여 우는 법을 배운다. 그것은 검게 익은 아보카도와 같이 부푼 어머니의 눈, 오빠의 뒤틀린 약지, 그리고 언제까지나 태어날 수 없을 동생에 대한 침묵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미디어와 창작물에서 다루는 가정폭력 가정은 소외받고 가난하며, 방치되어 남루한 모습들이다. 하지만 <보라색 히비스커스> 속 캄빌리의 아버지 ‘유진’은 군사 독재 정부에 맞서 진보적인 언론사를 운영할 만큼의 명예와 지식, 백여 명의 학비를 지원할 만큼의 부를 가진 인물이다. 그가 소유한 많은 것들은 그를 가정 밖 모두에게 존경받도록 만들어주지만, 동시에 가정 안의 신으로서 존재하도록 만들어준다. 그 신은 사랑이라는 이름의 피를, 자식이라는 이름의 성체를 취하며 끝없이 거대해진다.
캄빌리와 오빠, 어머니의 싸움은 나이지리아라는 보수적인 국가와도, 경제적 혹은 지식적 빈곤과도 연관돼 있지 않다. 특수하거나 먼 나라에만 해당되는 소설이 결코 아니라는 뜻이다. 가부장이 신이 되고 가정이 지옥이 되는 지구상 수많은 지붕 밑의 이야기다.
<보라색 히비스커스>는 어둡고 짓눌린 순간들을 다루기도 하지만, 이보족 특유의 촉각적으로 전해지는 풍부한 언어표현과 21세기의 가장 세련된 페미니스트로 손꼽히는 아디치에의 감각이 만나 읽는 즐거움까지 선사한다. 특히 느끼고 표현하는 데 서툴던 캄빌리가 사랑에 빠지는 감정이 정말 아름답게 묘사된다. 그러한 캄빌리의 모습은 항상 경직된 채 아버지의 인정만을 갈구하던 아이가 평범한 열여섯 소녀였음을, “원하는 것이 될, 원하는 것을 할 자유”를 누리기에 마땅함을 보여준다.
검푸른 폭풍우가 지나간 캄빌리의 집 정원에 이페오마 고모가 준 히비스커스 씨앗이 무사히 뿌리를 내리기를. 싹을 틔우고 큼지막한 다섯 잎을 내밀어 온통 보랏빛의 군락을 이루기를, 이뤄내고야 말기를.
우리 집이 풍비박산 나기 시작한 것은 오빠 자자가 영성체를 하지 않아서 아버지가 집어 던진 무거운 미사 경본이 식당을 가로질러 날아가 장식장의 도자기 인형들을 박살 냈을 때부터였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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