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원 1 - 요석 그리고 원효
김선우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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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참으로 간사한 동물입니다. 목표를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덤비기도 하고, 보다 편한 것을 추구하게 될때는 더이상의 힘든 일은 거부하게 되곤 합니다. 바로 그런 얄팍한 인간의 한계를 넘기 위해 애쓰는 종교적 신념을 가진 이들을 보게 되면 우리는 경외심을 가지게 됩니다.

 

종교인으로서의 원효를 바라본 것은 단지 몇 줄밖에 소개되지 않는 역사수업시간에서 였을 것입니다. 해골에 고인 물 한바가지를 통해 깨우침을 받은 원효의 이야기는 워낙 잘 알려진 일화라 더 소개될 것도 없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소설을 통해 생각하게 되는 원효의 모습은 친근감이 듭니다. 본질에서 벗어나 점차 권력에 귀의하는 당대 불교인들이 누릴 수 있는 영위를 뿌리쳤고 스승 혜공의 가르침을 몸소 직접 실천하고자 대중곁으로 한걸음 나아가고 있던 기인 아닌 기인이었던 원효.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下化衆生) : 위로는 진리를 깨치고 도를 이루어 부처가 되려고 정진하는 동시에 아래로는 고해에서 헤매는 일체중생을 교화하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책에서 원효의 발길을 정의하는 핵심적인 사자성어라 하겠습니다.

 

공적으로는 귀족 불교로 전락하고 있는 시대에서조차 스스로 백성들 앞으로 걸어나갔으니 당대에는 4차원적 인물이었을 수도 있으나 후세에는 참된 불자의 모습이라 칭송받아 마땅할 것입니다.

그리고 사적으로는 불자의 모습이 아니어도 매력을 끈 이유는 바로 2권에서 펼쳐지는 요석공주와의 일체화일 것입니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전쟁, 그리고 나라 내부에서도 벌어지는 시기와 암투, 권력간의 갈등 등 내 몸 하나 보전하기 바쁜 어수선한 사회를 살면서도 원효가 지켜나간 삶의 원칙은 어리석었지만 아름다웠습니다. 순탄치 않은 출생부터 부침이 많은 성년을 보내면서도 그의 불자적 의지와 신념은 다른 어떤 위대한 승려들보다도 강하고 아름다운 그것입니다.

 

- 고통이라는 진리, 고통이 생기는 원인을 말하는 진리, 고통이 소멸된 진리, 고통을 소멸시키는 길인 진리. 이 모든 진리를 깨달은 부처의 님이 바로 중생이다. 중생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부처가 있는 것이다.

 

여기에 비록 찰나 같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헌신적이고 진심 어린 사랑을 보여준 요석공주와의 정열은 원효가 더욱 인간적으로나 대중적으로나 친근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요인이겠습니다.

 

특히 작가님이 선보이는 유려하고 색다른 문장의 표현들이 이런 원효의 모습을 소설속에서나마 더욱 아름답게 빛내주는 것 같습니다. (알고보니 원래는 시인이라고 하더군요.) 요석공주의 이름부터 달리 지어낸 것을 보면 소설만이 갖는 여러 특정한 장치 중 하나겠지만 나름 어색하지 않고 절묘한 표현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어두운 새벽과 빛나는 저녁. 어떤가요? 이정도면 소설만이 갖는 적절한 언어유희를 잘 구사한 것 같지 않나요?

 

거기에 요석과 원효가 만나는 장면은 섬세함이 느껴지면서 뭔가 거룩한 자애로움을 느끼게 해주는 부분들이었습니다.

 

- 저는 성심을 다해 넘어지고 성심을 다해 일어날 겁니다. 곁에 있든 없든 제가 언제나 당신과 함께임을 잊지 마세요.

- 오래전 죽은 고목처럼 저는 텅 비었습니다. 이 텅 빈 몸이 원하는 유일한 것이 있다면 오직 님입니다.

- 혼불 없이 그저 텅 빈 몸으로 살았습니다. 죽어서 살았습니다.

- 다 가지겠습니다. 지난 세월과 앞으로의 세월까지 모두 이 밤에 가지겠습니다. 이 순간이 저의 영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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