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감동은 위험하다
이정서 지음 / 새움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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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낯익었다 싶었는데.. 역시나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10여년전 읽었던 같은 제목의 책이 기억났다. 잠깐 읽다가 말았지만 제목만큼은 기억 속에 자리잡았나 보다. 그때의 저자는 이환이라는 분이다. 혹시 동명이인의 작가가 아닐까 싶은데.. 출판사도 같고 내용 역시 비슷해보였다.

 

이명원 사태.

벌써 10년도 더 넘은 이야기가 되었다. 기억이 희미해지곤 있지만 당시 표절논란으로 거론되던 이야기들은 어렴풋이 떠올랐다. 하지만 잠깐 이슈화되긴 했는데 어느새 조용히 사그라들었던 것 같다. 이후론 어떻게 결론이 났는지는 모른 채 잊혀졌던 그런 사건. 아마도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권력의 힘으로 조용히 무마시켜버리지 않았을까.

 

스토리의 주된 내용은 거물 교수의 표절 논란과 관련한 것이다. 이제는 뉴스거리로 심심찮게 등장하게 되는 대학가의 논문 표절 논란. 우리 국문학계의 거물이라는 분께서도 잠시 일탈에 참여하신 듯하다. 그런 분의 ‘일탈’에 대해 직언을 한 대학원생은 무례하고 발칙한 죄로 인해 외압에 시달리다 결국 학교를 떠나게 되었다.

 

형식이 소설이긴 해도 실화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김윤식 교수는 실제 김윤식 교수를 모델로 삼았다. 엄연히 실명으로 거론되다니 참으로 놀라웠다. 이미 한바탕 언론을 통해 이슈화되었기에 가공의 인물을 내세우기보다는 직설적으로 이름을 밝힌 것인지도. 그렇다면 이인서라는 인물은 바로 이명원씨 그 분일 것이다. 왜 이 인물에 대해서는 이명원이라고 얘기하지 않았을까. 아마도 이명원씨가 실제로 학교를 떠나게 만들었던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한 견제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굳이 거론하게되면서 또 한번 피해자로서의 상처를 또 안겨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의 배려일지도.

 

김윤식 교수라는 분이 그렇게 문학계의 대단한 지위를 가진 인물인지도 책을 통해서야 알게 된 것이고 또 그런 그가 표절논란에 휘말린 이후로도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고 지낸 것을 보면서 이명원 사태의 이면에는 분명 다른 힘이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된다. 표절의 심각성보다는 대교수의 간판에 흠을 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춘 그 ‘힘’은 언론조차 조용히 침묵시켰고 학교 내에서는 이인서를 코너로 몰고 가 어떻게 해서든 링 밖으로 내쫓으려고 동분서주한 듯하다.

 

이 책이 표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는 있지만 중심은 다른 곳에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도 바로 그 힘이 감지되어서이다. 이 책과 관련한 저자의 변을 보게 되었는데 정작 김윤식 교수 본인의 문제라기보다 그 주변의 파벌들에 의한 문제야기가 핵심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그 속에는 한국사회에 뿌리내린 학연, 지연 등의 연줄이나 인맥 문제라든지 아닌 것을 아니라고 얘기하지 못하게 만드는 권위적인 선학 후학 관계 등도 포함되어 있다고 본다. 여기서도 실명이 거론되는 언론사가 나오고 대학관계자들 여럿도 등장하면서 바로 이인서의 대항마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옳고 그름의 기준이 흐려지고 혼탁해져가는 이유도 바로 이런 사안이라고 본다. 오죽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마음 한켠에는 어떤 문제가 발생할 때면 아는 인맥을 동원해서 자신에게 유리한 결론을 이끌어내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들까. 권력에 기대고 연줄과 인맥에 의존하면서 올바른 정의조차 제대로 정립되지 못하는 사회. 이런 사회에서 공적으로, 사회적으로도 심각한 사안이 발생된다면 과연 얼마나 제대로 수습할 수 있을까.

 

90년대 후반 대한항공 화물기가 영국에서 추락한 사건이 있었고 해외 조사팀들이 수사한 결과 여러 가지 복합요인 가운데서 우리 한국인만의 독특한 선후배 관계에 대한 예우 등이 문제를 키운 점도 있다는 사실을 다큐멘터리로 본 적이 있다. 비행기가 심각하게 기울어지고 있는 가운데서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다른 승무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왜 이럴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해답 가운데는 선임에게 항명하는 것이 버릇없는 행동이라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저변에 깔려 있는 인식들이 사고의 한 요소로 작용했다는 사실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세계적인 히트작을 기록할 뻔했던 황우석 교수의 프로젝트가 결국 희대의 사기극이라는 결말이 나오면서 한편에서는 굳이 같은 국민의 업적을 까발려서 밝힐 필요가 있었냐는 듯한 내용으로 이야기했던 것도 기억이 난다. 위대한 업적이 아니라 잘못된 결론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더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내부고발을 통해 밝혀낸 이런 일들조차 이렇게 어이없는 평가를 받았다는 모습을 볼 때 우리 사회가 점차 도덕적 윤리적 문제에 대해 둔감해져간다는 생각도 든다.

 

표절논란도 이런 맥락에서 야기되는건 아닐까. 나 하나쯤 어때로 시작된 표절 사건은 이제 여기저기서 우후죽순 터져나오면서 아예 당연한 듯 받아들여지고 있는건 아닌지. 아니, 표절문제뿐만이 아니라 전반적인 우리사회의 문제점들이 대체로 문제 제기보다는 조용히 덮어두는 것이 더 익숙해져가는 요즘이다. 호미로 막을 일을 방치해두다가 가래로도 막기 어려운 급기야 대형사고로 이어지게 해선 안될 일이다. 감동보다는 냉정함이 필요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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