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1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가형 옮김 / 해문출판사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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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잘 지내셨나요, 부인.

참으로 오랜만에 다시 만나뵙게 된 것 같습니다.

초등학생 시절 부인의 대표작 중 하나인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우리 배우들이 연기한 드라마로 보게 된 이후 저도 부인의 왕팬이 되어버렸지요.

어린 마음에도 부인의 책을 읽고 싶은 마음에 서점에 달려가서 시리즈로 된 것들을 하나씩 사서 집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범인이 누굴까 하는 긴장감과 불안감 때문에 겁이 나서...) 조심스레 읽어보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그 이후로는 한창 사춘기와 학업, 그리고 바쁜 일상 속에서 파묻혀 지내다보니 부인에 대한 관심도 식어버린게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알라딘에서 개최하는 이런 성대한 리뷰대회를 계기로 다시금 20여년만에 부인의 손길이 담긴 작품들, 그것도 미처 읽어보지 못했던 다른 작품들도 향수병처럼 그리운 마음에 하나 하나 만나보고 싶어졌어요.

부인의 소설은 특별했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그러했듯이 저 역시도 책과는 친하게 지내질 못했던 아이였죠.

하지만 이상하게도 부인의 책을 읽게 되면 엄청난 집중력 향상의 효과를 보게 되었습니다.

어서 책장을 넘겨가며 사건의 전말이 어떻게 되는지 파헤쳐보고 싶은..

내가 경찰이 된 기분 마냥 읽는 동안 그저 한없이 스토리 속으로 빨려 들어가곤 했어요.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살인사건이라는 설정 속에서도 부드러운 느낌과 온화한 분위기, 때로는 약간 코믹스런 설정 등은 추리소설이 너무 무겁게만 느껴지지 않게끔 해줬네요.

게다가 범인들의 발견과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는 과정은 더욱 흥미로웠습니다.

정말 이런 생각들을 어떻게 만들어냈을까 감탄하면서 읽은 책들이 대부분이었어요.

사건을 수사하는 경감이나 형사가 피해자를 증오한 또 다른 혈육이었다거나 너무나 사랑했던 아이에 대한 복수를 위해 가족은 물론 집사, 하녀 등이 합심해서 공모한 살인사건도 충격적이었고, 무엇보다 1인칭 관점의 일기 형식으로 전개되어가면서 나도 모르게 내가 범인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이야기들은..

어쩌면 지금이야 식상한 레퍼토리가 될지 몰라도 부인이 지내던 그 시대엔 반전이란 어떤 것인지 가르쳐주는 새로운 설정이었으리라 짐작했습니다.

어쩌면 쉽게 지나치고 넘어갔을지도 모를 단어 하나 하나, 문장 한 줄 한 줄이 사건 해결의 의미심장한 요소로 다가오는 것은 책을 몰입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소였어요. 읽어가면서도 내가 뭔가 빠뜨린게 없나 싶어 문장을 되새겨 읽고 의미를 곱씹어보며 세세하게 읽는 습관까지 생길 정도였죠.

어느 에피소드에서 등장했던 ‘간단히 필요한 조치를 취했다‘라는 문장이 안겨 줬던 충격적인 의미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찢어진 종이에 적힌 필기체 글씨에서 'he'라고 적힌 부분이 남긴 흔적 역시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어요.

살인이라는 파장이 큰 이슈가 영국이라는 나라의 이미지와 비교되는 것도 부인의 작품을 보는 재미를 더했다고 봅니다.

영국하면 신사의 나라, 우아하고 단아하고 격식을 갖춘 이미지, 영국인하면 바로 그런 이미지를 가진 품위있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을 심었죠.

그런 사람들이 느끼는 치졸한 생각, 야만적인 행위, 번드레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음흉하고 이기적인 속내를 가진 모습을 드러내는 과정들이 흥미로웠습니다.

격식이라는 겉치레에 갇혀 지루한 일상을 보내던 주변 사람들이 살인사건이라는 큰 이슈에 관심을 보이고 들뜨기까지 하는 모습하며, 범인이 자신의 목적을 들키지 않기 위해 제2, 제3의 살인이 연속해서 일어나며 사건이 파멸로 치닫는 과정을 보면서

품위와 격식에 대한 허상을 고발하는 것 같아 묘한 희열을 느끼기도 했죠.

주요 등장인물들 역시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습니다.

코난 도일이 창조해 낸 멋스럽고 세련된 모습의 신사탐정 셜록 홈즈도 좋았지만

약간은 뚱뚱하면서도 뭔가 우스꽝스러운 인상을 떠올리는 무슈 포와로나 단아하면서도 냉철한 생각을 품은 미스 마플 캐릭터가 더 가깝고 친근하게 느껴졌어요.

물론 그런 영향을 준 것은 책도 책이지만 다양한 영화들과 TV시리즈 드라마들 덕분도 있었죠. 특히나 오보에 음악이 흘러나오던 영국 드라마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주로 미스 마플이 나오는 에피소드가 많았던 시리즈물이었죠. 영국이란 나라에 가보고 싶은 막연한 동경심까지 들더군요.

단조롭고 지루한 일상을 일깨워주는 추리소설의 흥미.

부인에겐 바로 그런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재주가 있어 읽을때마다 늘 감탄하게 만들었습니다.

많은 세월이 흐르고 그에 따라 새로운 추리소설들도 무수히 출간되고 있지만 여전히 부인의 존재는 대단하기만 합니다.

추리소설의 여왕이라는 칭호가 지금 시대에서도 결코 어색하지 않네요.

리뷰대회는 내일로서 마감이지만 부인의 작품들에 대한 저의 관심은 이제부터 다시 시작될 듯 합니다.

아직 읽어보지 못한 작품 가운데 추천평을 받던 <메소포타미아 살인>을 이제 읽기 시작할까 해요.

같은 시대를 살아 온 적은 없지만 -공교롭게도 부인이 세상을 떠나던 그 해에 제가 태어났습니다- 시공을 초월해서 부인에 대한 저의 성원은 계속될 겁니다.

변함없이 꾸준하게.




멀리 한국에서.

친애하는 당신의 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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