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너의 목소리가 들려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전에 살던 아파트 근처에는 급커브가 있는 해변 도로가 나 있었다.
주말이면 해변을 따라 오고가는 차량들로 북적이다가도 새벽녁이면 조금 한산해진다. 이때쯤 어김없이 등장하는 폭주족 무리들이 있었다. 새벽 창밖을 내다보다 굉음을 일으키며 나타나는 그 아이들을 보며 '한심한 놈들'이라고만 치부했었다. 나만의 주관적인 입장과 편견에 따른 해석이었을 것이다.
책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갈 곳 없고 할 일 없는 아이들의 마지막 '소리'라도 되는 그 굉음에 대해서. 그 무리 중에는 제이같은 아이들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결국 그건 나와 상관없다는 결론에 이르면서 감상의 싱거운 끝맺음을 맺게 될 것이다.
그렇다. 그 아이들은 나를 비롯, 대부분 일반 사람들의 관심밖의 대상들이다. 같은 땅 같은 하늘 아래 같은 말을 쓰는 같은 국민이라해도 태생이 다르고 사는 환경이 다르고 그밖에 등등 비교하기 좋아하는 한국인으로서 같은 '레벨'이 아니라면 천대시 또는 무시되는 지극히 냉정한 현실에서 그들이 좋은 평가를 받기란 어쩌면 터무니없는 소리일지도 모른다. 그런 소외된 현실에서 그들은 또 오늘 저 해변도로에서 달리고 또 달리다 자신의 고독한 삶을 해방하려 들지도 모른다.
태생부터 범상치 않았던 제이, 어린 시절부터 버림의 고통을 쓰디쓰게 배워왔으며 삶의 목표는 그저 의미없는 하루살이 인생을 실천해가는 그 아이. 제이의 주변인물들을 포함해서 책을 읽고 있는 내 자신에게도 그 아이의 존재는 과연 어떤것인지 희미하다. 아니, 나같은 사람은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지도 못할지 모를 일이다. 왜? 우리네 환경은 다른 상황을 이해하고 포용할만큼 관대하진 못하니까. 책을 보면서 아이의 마음을 이해한다면서도 실제 접하게되면 가까이 가려고 하지도 않을뿐만 아니라 혹시 해를 입을까봐 두려워하고 경계하는 것이 현실이다.
제이는 폭주족이기 이전에 고아였다. 우리는 불우한 환경을 딛고 인생의 반전을 이루는 위인전기같은 이들의 이야기를 기대하지만 제이의 삶에선 그저 야생에서의 생존체험만이 있을 뿐이다. 자신의 잘못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관심을 싸늘하고 차갑기만 한 체험이다. 왜일까? 위인전기와 같은 반전을 이루지 못하는 제이는 그저 비난받으며 사지로 내몰려야만 하는 것일까? 아무도 그 대답을 알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오늘도 우리는 경쟁과 공동화에 익숙해져가면서 낙오해서는 안된다는 일념으로 치열하게 살아가다보며 점점 나 자신 또한 고아가 되어가고 있는건 아닌지 잊고 살게 된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경계를 긋고 나와 다른 환경, 나와 다른 레벨에 대한 배타적인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결국 그런 무리에서 벗어나게 될까 두려운나머지 우리는 오늘도 열심히 남들과 동일시한 삶을 살려고 발버둥이다. 그리고 그런 고된 삶 속에서 겪게 되는 고독함과 소외감, 답답함, 분노 등은 모두 제이와 같은 감정을 경험하고 있다. 이 또한 왜 이런 걸까? 우리는 결국 같은 입장 같은 처지의 인간이 되고 있는게 아닐까?
제이와 동규, 그밖의 등장인물들을 보며 사회이슈인 왕따, 집단따돌림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결국 이들은 사회로부터 왕따를 당하면서 그들만의 세상안에서만 움직이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을 왕따시킨 사회 내에서는 또다시 왕따의 희생양을 찾아 분주히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나와 다른 환경, 다른 생각이 어떻게 이러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어이가 없다. 과연 이런 사회에서 이타적이고 남을 돕는다는 마음을 갖기란 갈수록 어려워지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제이의 목소리는 곧 누구에게나 해당될 수 있는 외침일 것이다. 바로 며칠전 미국 오클랜드 오이스코대학에서 발생한 한국계 미국인의 총기 난사사건 또한 이러한 맥락으로 해석해야할 것이다.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보려던 내가 어느날 사회의 고아로 남게 되었을때 과연 나는 웃으면서 세상을 이해할 수 있을것인가. 그때 나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던 어떤 격언이 떠오르는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