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대, 안녕 - 청소년,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보리 청소년 9
루댜 외 18명 지음, 김영근.청소년문화연대 ‘킥킥’ 기획 / 보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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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고백할래 “나도 이젠, 십대 안녕!!”

 

유난히 예쁘고 똑똑했던 우리 언니랑 같은 학교에 다니지 않았더라면 내 사춘기는 조금 달랐을까? 중학교 3년 내내 나는 누구누구의 동생일 뿐이었다. “네 언니였다면 과학 실험을 더 잘 했을 텐데, 누구누구였다면 가사실습 마무리가 좀 더 꼼꼼했을 텐데, 걔는 반장이고 예쁜데 쟤는 동생인데 정반대네......”이런 수군거림 속에서 아슬아슬했던 사춘기는 느리게 지나갔고 스스로 만든 감옥 속에서 죄인처럼 지냈다. 주눅이 들어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방법을 제대로 찾지 못했다. 그냥 내 일상을 이야기하면 되는데, 매사에 자신 없던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잘 하지도 못하는 공부와 학교에서 하루에 1번씩은 꼭 언니를 소재 삼아 친구들과 대화를 나눴다. 아마 친구들은 내가 공부만 신경 쓰는, 언니 자랑만 하는 아이로 여겨졌을 것이다. ‘내’가 빠진 대화 속에서 친구와 우정은 쌓이지 않았다. 유독 나는 사춘기 시절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친구들과의 추억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지우고 싶은 시간이기 때문에서인지 잘 모르겠다.

결론적으로 나의 십대는 되돌아가고 싶지도, 떠올리고 싶지도 않은 시간이다.

 

글을 써서 세상과 소통하기

그 시절 내가 어쩔 수 없이 택한 것이 ‘움츠림과 어두움’ 이었다면 지금의 어떤 아이들은 글쓰기를 통해 세계를 벗어나려 노력중인 모양이다. 2005년부터 시작한 ‘글틴’(http://teen.munjang.or.kr)이라는 청소년문학사이트의 생활글 코너에서 속내를 드러내던 ‘십대 안녕’(보리)의 아이들은 개학을 앞두고 학교 친구들과 느닷없이 무전여행을 떠나기도 하고(98쪽), 이민 때문에 학교를 갑자기 떠난 선생님과 함께 했던 시간을 소중한 추억으로 남기(새기)기도 한다. (92쪽) 자리를 바꿔 주지 않았다는 사소한 이유로 중학교 때의 따돌림을 겪다가 겨우 벗어나 고등학생이 되지만, 또 다른 친구를 소외시키는 주변 친구를 보며 “고통은 세계의 일부”(82쪽)일지도 모른다는 깊은 통찰을 하기도 한다. 이 곳 아이들은 글을 써서 끊임없이 ‘나’를 증명하고, 자기 안에만 갇혀 있으려고 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또한 일상의 고민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대안을 찾아내며, 생각보다 정의롭다. 초등학교 시절 친구에게 상처를 받았지만 새롭게 만날 또 다른 누군가의 “차가워진 손을 따뜻하게”(61쪽) 잡아줄 준비를 한다. 두려움과 걱정에만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깨달음으로 한 발자국 더 나아가고 있다. 놀랍다. 치매에 걸려 외계인(?)이 된 듯한 할머니에게서 미움이 아닌 “달빛 받은 영롱한 미소”(147쪽)를 발견하는 눈도 이런 글쓰기를 통한 사유의 힘에서 나온 것이다.

 

괜찮니?

 

웅크림과 머뭇거림이 반복되던 시간을 겨우 지나 나는 운 좋게 교사가 됐다. 또 2년 전부터는 글틴 생활글 게시판 담당자가 되어 ‘십대 안녕’ 속 아이들을, 직접 온라인 공간에서 만나고 있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 나오는 라일리 같은, 예민한 아이들의 감정을 만나고, 들어주는 자리이다. 그 영화에서처럼 복잡한 아이들의 감정의 구슬을 다른 곳으로 흘려보내지 않고, 소중하게 끌어안으려 한. 부족하나마 그들의 기쁨도, 슬픔도, 내가 가졌던 외로움도 함께 만나고 보듬어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글로 만나지만 이 아이들도 내 제자이다. 재밌는 건 어떨 땐, 속 깊은 상처를 드러내는 그 아이들이, 학교 제자들보다 오히려 더 친숙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중학교 교사인 내가 만나는 지금의 십대들은 글 속 아이들보다 조금은 더 발랄하고 가벼워보인다. 하지만 잠깐 이야기를 나눠보면 현실의 아이들도 깊은 생각이 있다. 다만 모르는 대상에게 털어놓아 얻게 되는 속 시원함이 없어서인지, 귀담아 들을 만발의 준비가 되어 있는 교사에게도 속내를 잘 드러내지는 않는다는 것. 그럴 때,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들에게 더 크게 웃어 준다든지, 손을 잡아 준다든지, 이름을 더 크게 불러준다든지, “괜찮니?” 하거나 살짝 모르는 척 하면서도 관심 깊게 지켜봐주는 것이다.

이 책은 걱정 어린 눈으로 청소년을 바라보는 나 같은 어른에게 때론 씩씩하게 또 대책 없이, 때론 애써 태연한 척, 울음 삼키며 “괜찮아요.”라고 화답하는 십대들의 소중한 이야기이다. 더불어 ‘십대 안녕’을 읽으며, 나는 지난날 상처 받았던 내 십대 시절을 떠올렸다. 비로소 “십대 안녕.” 이라고 가볍게 말할 수 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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