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처음 배울 때는 사진가, 곧 셔터를 누르는 이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진은 온전히 사람의 의도를 담아낸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생각이 착각이었음을 깨달았다. 내가 의도한 것 너머의 것이 사진에 담길 때, 그 사진은 숨겨진 진짜 능력을 발휘한다. 밤하늘에 펼쳐진 무지개처럼, 내가 의도하거나 조작할 수 없는 영역이 분명히 있다. 사람이 조작하더라도 그 결과물이 펼쳐내는 세상은 사람의 예상을 뛰어넘는 전혀 새로운 세계다. 나의 시간은 그 세계를 보기 전과 본 후로 구별된다. 내 안의 선입견이 쨍하고 깨지는 순간이다.-3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