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죽이기』

유지현

 

1. 2014년 8월 9일 미국 미주리 주의 퍼거슨 시에서 한 흑인 소년이 경찰의 지시에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의 총탄을 여섯 발이나 맞고 사망했다. 그 당시 흑인 소년은 비무장 상태였다. 이에 분노한 시민들은 연일 격렬한 항의 시위를 벌였다. 이에 지난 8월 16일 미주리 주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이 일대 야간 통금령까지 내렸다. 그러나 이 조치로도 항의 시위를 멈추는데 실패하자 미주리 주 정부는 18일 새벽 주 방위군까지 투입했다.

 

2. “내일 가자지구에 배움은 없을 것이다. 어린이들이 한 명도 남아있지 않을 테니까.” 이스라엘군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공습으로 숨진 가자 어린이를 축하하며 환호하는 이스라엘 우익 군중들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공개됐다. 유튜브에 올라온 이 동영상에는 우익 군중들이 어두운 거리에서 이스라엘 국기를 흔들며 “가자에 어린이는 없을 것이다” “나는 아랍인을 증오한다” “가자는 무덤이다”라고 외치는 장면들이 담겨 있다. 이 동영상은 찍은 이는 이스라엘 언론인 하미 하르 자하브라고 러시아 위성방송 RT가 전했다.

 

3. 9월 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저장소(이하 일베)' 및 자유대학생연합(이하 '자대련') 회원들이 모여 먹거리 집회를 벌여 관심이 쏠리고 있다. (중략) 앞서 이곳 단식 농성장 주변 광화문 광장에서 일베 회원들이 먹거리 집회를 예고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는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 농성 중인 유가족과 진보 인사들을 조롱하려는 의도인 것으로 보인다. 일베 회원들은 실제로 이날 오전부터 광화문 광장에서 치킨, 라면, 햄버거, 도시락 등 먹거리를 나눠 먹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앞서 언급한 사례들은 2014년에 일어난 일이자 현재에도 여전히 진행 중인 사건들이다. 앞의 두 사건들은 다른 국가에서 일어났던 일들이고, 마지막에 언급한 사건은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서로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이 세 사건들은 모두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타자(他者)에 대한 배려와 관심이 부족한 데에서 온 사건들이다. 인종차별, 민족 간의 갈등(혹은 종교 갈등), 그리고 피해자를 향한 조롱 등 모두 다 다른 사람 입장을 고려하기보다는 자신을 중시하는 태도에서 나오는 문제들이다. 『앵무새 죽이기』는 이런 문제에 대해 고발하고 있는 책이다.

 

『앵무새 죽이기』는 진 루이스 핀치, 짧게는 스카웃으로 불리는 화자에 의해 전개된다. 스카웃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직전부터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의 일들이 소설의 주를 이룬다. 이렇게만 보면 이 소설은 스카웃의 성장소설로만 보인다. 실제로 이 소설에서 스카웃은 정신적으로 큰 성장을 한다. 그렇지만 여기서 좀 더 초점을 맞추고자 하는 부분은 따로 있다. 바로 편견이다.

 

 이 소설의 주된 사건이자 어린 시절 스카웃의 주된 사건인 것은 한 재판이다. 그 재판은 여타 다른 평범한 재판과는 다르다. 스카웃의 아버지가 변호를 맡았다는 점에서, 온 마을의 관심이 쏠렸다는 점에서, 스카웃과 그녀의 오빠가 이를 통해 성장통을 경험한 점에서, 그리고 한 흑인 청년이 백인 여성을 강간한 여부를 가린다는 점에서. 여기서 주목할 점은 소설 속 배경이 1930년대라는 점이다. 현재와 달리 그 당시에만 해도 흑인들은 백인들이 이용하는 공공시설을 사용해서는 안 되었다. 심지어는 교회마저도 따로 다녀야 했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흑인 청년이 백인 여성을 강간한 혐의로 법정에 선다는 건 그것이 사실이건 아니건 간에 큰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때문에 소설 속 스카웃의 아버지인 애티커스 변호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조롱과 무시, 심지어는 생명의 위협까지 받게 되고, 스카웃과 오빠 역시 마찬가지의 일들을 겪게 된다.

 

 소설에서는 어린 스카웃의 시선에서 바라본, 편견에 사로잡힌 어른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편견이 없는 어린아이의 눈에 그들은 확실히 이상하다. 누구라도 박해받는 건 옳지 않은 일이라 가르치며 히틀러의 만행에 공분하던 학교 선생님은 정작 흑인들에 대해서는 ‘분수도 모르고 주제넘게 군다고’ 하고, 배심원들은 흑인 청년이 강간을 한 사실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에게 유죄 판결을 내린다.

 

 이것이 비단 이 시기에만 국한된 사건인 걸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모든 곳에서 사람을 겉모습만으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지만 여전히 인종차별 문제는 발생하고 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필리핀 출신의 국회의원 기사에는 본업인 정치에 대한 비판보다 피부색에 대한 조롱이 주를 이룬다. 인종차별은 여전히 진행 중인 문제이다.

 

 인종차별 외에도 차별은 존재한다. 사람들은 자신과는 다른 사람에게 무자비하다. 인종이 다른 사람에게, 종교가 다른 사람에게,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 심지어는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비난을 쏟아낸다. 모두가 똑같은 사람이라는 진리는 편견이라는 광기 속에 모래알처럼 부서져 내린다. 그 진리를 믿고 있는 사람도 광기 앞에서는 무력할 뿐이다.

 

 소설 속 스카웃의 아버지도 마찬가지이다. 광기에 찬 사람들 속에서 모든 사람들은 평등하다는 생각을 품고 그것을 지켜나가려 애쓰지만 결국 흑인 청년은 절망에 빠져 탈주를 감행하다 죽게 된다. 사람들은 스카웃의 아버지가 무모하다고 비웃고, 역시 ‘깜둥이들이란 늘 그런 식’이라고 편견을 굳건히 다진다. 아버지의 소신대로 자라던 스카웃과 오빠는 크게 절망하게 된다. 변한 건 아무것도 없어 보인다.

 

 정말 아무것도 바뀐 게 없을까? 그대로일 것 같은 사회는 조금씩 달라져 있다. 스카웃 아버지를 해하려 했던 무리 중 한 사내는 어린 스카웃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돌아서게 되고, 유죄 판결이 나기는 했지만 최대한 흑인 청년의 편에 서고자 했다. 다른 방식으로 스카웃 아버지의 편에 섰던 사람들도 분명 존재한다. 그보다 더 큰 가능성은 스카웃과 오빠가 사건을 보고 들으며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초반 집 안에만 살면서 온갖 소문에 시달리는 옆집 아저씨를 단순 놀이 대상으로만 여기던 스카웃은 재판 사건을 겪으며 아버지가 말한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지 않고서는 그 사람을 참말로 이해할 수 없다’를 이해하게 된다. 재판에 크게 절망했던 스카웃의 오빠는 언젠가는 자신이 불공정한 재판제도와 사회를 바꿀 거라 다짐한다. 이 아이들이 자라 나중에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운동을 일으키고 세상을 한층 더 낫게 바꾸고, 앞으로도 바꿀 것이라고 작가는 믿는 거다. 실제로 이후 킹 목사 등 여러 인권운동가의 활약으로 미국 사회는 조금씩 변화해갔다.

 

 소설 중간 스카웃의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엽총을 사준다. 당부의 말도 함께 건넨다. 곡식을 먹거나 창고에 둥지를 트는 등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다른 새를 죽이는 건 몰라도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된다’고. 앵무새는 아름다운 소리를 사람들에게 전할 뿐 그 어떤 해도 가하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해를 가하지 않았음에도 편견으로 인해 죽음을 맞은 흑인과 소문에 시달리는 옆집 아저씨는 앵무새이다. 앞에서 언급한 사건들 역시 앵무새를 죽이는 행위이다. 조금만 관용을 가지면 될 일을 모두 상대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혀 미워하고 죽이고 있다. 우리들 역시 앵무새 죽이기를 하고 있지는 않을까? 고민해봐야 할 문제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