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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이방인의 산책
다니엘 튜더 지음, 김재성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2월
평점 :
몇 년 전, 영국에서 흥미로운 사실 하나가 발표됐다. 당시 영국 총리였던 테레사 메이가 '외로움 장관'이라는 새로운 직책을 제정했다는 소식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이 황당해 보이는 직책이 만들어진 이유를 확인해보기 위해서는 브렉시트 투표 일주일 전으로 시간을 잠시 돌려볼 필요가 있다. 브렉시트 투표를 하기 일주일 전, 브렉시트를 옹호하던 백인 우월주의자에게 살해당한 조 콕스 의원은 외로움 예방 캠페인을 주도했었다고 한다. 그가 살해당한 이후 의회에서 그녀를 추모하기 위해 외로움 위원회를 신선했고, 그 위원회가 발표한 보고서를 바탕으로 테레사 메이가 '외로움 장관'이라는 이전에 보지 못한 직책을 만들었다고 한다.
조 콕스 의원을 살해한 테러리스트가 사회가 고립된 생활을 하며 외로운 생활을 하다 극단적인 결정을 내렸다는 점을 살펴보면 이 직책이 왜 만들어진 건지 납득할 수 있다. 또한 이 사실은 다른 한 가지 사실 또한 알려주고 있다. 외로움이 더 이상 개인의 특이한 문제가 아닌 범 사회적인 문제라는 것을.

다니엘 튜더는 그런 외로움 장관이 신설된 나라, 영국에서 온 사람이다. 한국생활 11년 차인 그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이방인의 눈으로 한국 사회를 낱낱이 해부한다. 그는 한국 사회에 애정을 가지고 있지만 경계에 서있는 사람만이 견지할 수 있는 경계인의 시선으로 내부인인 한국 사람들이 보지 못했던 점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영어강사, 금융맨, 외신기자, 경영인 등 다양한 직업과 소속을 거쳤기에 그의 시선은 폭이 상당히 넓다.
그는 책 서두에서 우울증에 걸린 자신의 아버지를 언급한다. 자신의 가정사를 먼저 이야기하는 것은 그가 아버지의 우울증을 생각해 보는 과정에서 자신의 삶 전반을 훑어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 과정에서 자신 역시 우울함이 내재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외로움까지. 그는 외로움이 자신에게 좀 더 큰 문제라 여기고 홀로 탐구를 해보다 이 외로움이라는 문제가 자신만의 문제가 아닌 현대사회의 문제점이라는 판단을 내리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지난 3년간의 사유를 담은 이 책을 출간하기에 이른다. 현대사회의 어떤 요소가 사람들을 단절시키고 외로움을 느끼게 하는지, 그리고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한 태도를 이야기하는 이 책을.
그는 먼저 외로움을 쉽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분위기를 꼬집는다. 우울증은 동정받을 수 있지만 외로움을 느낀다는 말은 동정은커녕 어딘가 결함이 있는 사람으로 취급당하기 쉽다. 그로 인해 사람들은 외로움을 느끼더라도 입 밖으로 내길 꺼려 한다. 현대사회로 접어들면서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은 많아졌지만 정작 그것을 적극적으로 논할 수 있는 장은 펼쳐지지 않은 셈이다. 다니엘 튜더는 유전적으로 외로움에 취약한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는 실험 결과를 설명하면서 더 이상 외로움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지 말고 사회적인 문제로 놓고 논의를 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바라본 한국은 어느 사회보다도 외로움에 취약한 국가다. 이전부터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서구 사회 역시 외로움의 문제를 겪고 있지만 일부 북유럽 사회 같은 경우 사람들 간의 단절을 보완해 주는 제도가 사회를 받쳐주고 있다. 그와 달리 한국은 외로움의 문제를 보완해 줄 사회적 제도가 빈약하다. 그 대신 그를 보완해 줄 만한 공동체가 발달해있으면 좋으련만 한국 사회는 그렇지도 않다. 빠른 경제 성장은 한국이 지금 이 위치까지 오를 수 있게 한 큰 동력이 되었지만 그로 인해 경쟁이 심화되고 극심해진 빈부격차는 공동체와 집단주의적 문화를 빠르게 와해시켰다.
한국은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현대화와 경제 발전을 이룬 나라지만 덩치 큰 동물을 통째로 삼킨 뱀처럼 아직 소화가 덜된 것이 많다. 물질적 성장과 함께 발달해야 할 긍정적인 문화(이를테면 부유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도, 아무런 사회적 안전망도 없이 아득한 상공에서 서구 자본주의가 한국 땅에 투척된 셈이다.
한국 사람들만이 외로움을 겪는 건 아니다. 다니엘 튜더가 태어나 자란 영국을 포함한 서구 사회 역시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심지어는 그런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강아지나 고양이를 기르거나 기계나 산업에게서 외로움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문제는 그것이 본질적인 외로움을 해결해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외로움 때문에 애완동물을 기르는 선택을 한 사람들의 경우 자신들의 외로움은 해결되었겠지만 정작 그들이 기르는 애완동물들이 또 다른 외로움과 불안을 느끼게 되었다는 사례가 그렇다. 책에서 언급한, 불리 불안을 느끼는 개와 고양이에게 항우울제를 처방한다는 미국의 사례는 사람의 외로움 때문에 또 다른 생명체에게 그것을 전가시키는 아이러니를 보여주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로 인공지능에게 정서적으로 기대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 역시 정서적인 고립을 사람이 아닌 다른 존재를 통해 해결하려는 시도들로 볼 수 있다.
그는 이러한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들을 여러 개 제시한다. 대표적인 것이 '걷기'이다. 그는 어릴 적 공원이나 숲에서 산책했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조금이라도 핸드폰을 꺼놓고 어디든 걸어보기를 제안한다. 자연 속에서의 걷기는 거대한 세상의 작은 부분으로 존재할 뿐이라는 일종의 일체감을, 도시에서의 걷기는 한발 떨어져 상황을 볼 수 있는 관점을 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또한 그는 자신이 겪었던 다양한 경험들을 예시로 들며 우리가 지금과 달리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 또한 제시한다. 냉철한 듯하면서도 사람에 대한 애정이 묻어 나오는 글들은 흔하디흔한 힐링 문구들과는 다른 편안함을 느끼게 해준다.
어느 한 사람의 문제라면 본인의 잘못일 수 있지만 수백만이 공유하는 문제이고, 이 문제로 곤란을 겪는 사람의 숫자가 해마다 증가한다면 그건 사회문제다. 외로움은 지금 그 단계에 와 있다.
그가 마지막에 말한 것처럼 외로움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인 문제의 단계에 도달한 이 외로움을 우리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 숨겨놓거나 혼자 끙끙 앓지만 말고 함께 이야기해보기 시작해야 한다. 그의 이 책이 외로움을 공개적으로 논하는 첫 시작이 되길 바란다.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