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구의 사회학 - 디자인으로 읽는 인문 이야기
석중휘 지음 / 도도(도서출판)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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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구 : 어수룩하여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출처 : 네이버 국어사전)

네이버 국어사전에 호구라는 단어를 검색해보면 여러 가지 뜻이 나온다. 그중 위에서 인용한 호구 뜻풀이가 오늘날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쪽에 해당한다. 이 호구라는 단어는 사회생활 속에서 어리숙하거나 약아빠지지 못해 이용해먹기 좋은 사람을 조롱하기 위해서나 혹은 반대로 자기 자신을 자조적으로 비하하며 폄하하는 용으로 주로 쓰인다. 어느 쪽으로 주로 쓰든 간에, 이 호구라는 단어는 결코 좋은 뜻이나 분위기를 내포하고 있지는 않은 것이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호구의 사회학을 탐색해보는 책이다. 저자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디자인과 그 업계와 세계를 통해서 호구를 탐색해보고 그 선을 정의를 내려보려 한다. 오랜 시간 디자이너로 일하고 그 안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 출간한 책이니만큼 다양한 디자인과 그 사례들이 등장한다. 프롤로그에서 작가가 잠깐 언급한, 디자이너인데도 글을 잘 쓴다는 다른 사람들의 칭찬이 전혀 과장된 게 아님을 증명이라도 하듯 미적감각이라고는 영에 수렴하고 디자인의 종류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데도 작가가 쉬우면서도 재치 넘치는 글로 서술한 덕분에 후루룩 읽어나갈 수 있었다.

책은 대략 3가지 파트로 나누어져 있다. [디자인의 배신]에서는 작가가 디자인 업계에서 일하며 겪었던 경험들이, [디자인이 살았던 시간]에서는 이전의 문화콘텐츠와 사회현상을 언급하며 의미를 분석해보고, [욕망 그리고 디자인]에서는 디자인 속에서 포착한 사람들의 욕망과 사회적인 구조를 파악해본다.

디자인으로 호구를 분석해보려는 책답게 글 중간중간에는 디자인과 사진, 그림 등이 컬러로 삽입되어 있다. 책에 수록된 이 이미지들을 텍스트를 보조해 주는 동시에 주제를 좀 더 깊이 파악하고 글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책은 호구라는 단어와 호구와 호구가 아닌 사람을 나누는 '선'으로 디자인 업계, 사람들 사이에 숨겨져 있는 욕망과 무의식, 그리고 더 나아가 사람들이 어렴풋이 인지는 하고 있지만 문제 제기를 하지 못해는 사회적 부조리를 이야기한다. 디자인을 통해서 사람들과 사회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자기 자신까지도. 작가의 날카로운 시선과 분석,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해 주는 문장을 읽다 보면 아무 생각 없이 넘어갔던 것들을 재정립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인상 깊었던 파트는 [디자인의 배신]이었다. 작가가 오래 근무한 디자인 업계의 관행을 먼저 이야기한다. 관행이라 부르지만 자세히 파고들면 경직된 관료주의로 워라밸이 처참히 무시당하는 디자이니 업계의 환경은 한숨과 답답함을 유발한다. 낭만이라는 단어로 포장되어 은폐되어왔던 디자인 업계의 환경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디자인에 무지하면서도 한 마디씩 말을 보태며 야근을 유발하는 기업의 '갑'들, 디자인이 모든 걸 바꾸어 주고 막대한 돈을 벌어다 줄 수 있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막무가내의 요구를 해오는 사람들, 면접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민감한 질문을 던지고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던 면접관들...... 이런 부조리는 우리에게 굉장히 익숙한 것이기에 더욱 갑갑하게 다가온다. 또 이것을 '어쩔 수 없지'라는 말로 퉁치고 넘어간 날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호구가 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우리를 호구로 만드는 것들이 무엇인지 그 '선'을 먼저 파악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 책처럼 말이다. 가장 먼저 필요한 건 호구를 만드는 구조와 욕망을 예리하게 감지해낼 수 있는 사유다.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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