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K의 미필적 고의 - 이춘길 소설집 걷는사람 소설집 3
이춘길 지음 / 걷는사람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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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작가가 등단하고 나서 무려 10년 만에 내는 첫 소설집이라고 한다. 등단한 이후 빠르게 소설집을 펴내는 다른 작가들이랑 비교해보면 사뭇 다른 행보라고 볼 수 있다. 도리어 그 다른 행보로 인해 작가가 펴낸 이 소설집에 흥미가 생겼다.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숙성된 끝에 나온 소설집에는 어떤 단편들이 실려있을지 호기심이 생겼다. 무엇보다도 작가가 '처음' 내디딘 그 발자취를 빠르게 확인해보고 싶었다. 장르를 막론하고 누군가의 처음을 보는 건 굉장히 낯설면서도 설렘을 동반하는 일이니.

책에는 총 7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등단작이자 이 책의 표제작인 「형사 K의 미필적 고의」부터 2016년에 발표한 단편 「피터의 편지」까지. 어떤 사람은 많다고 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적다고 느낄 수도 있는 이 단편들은 저마다 기묘한 분위기를 내뿜으며 소설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단편들은 쉽게 읽히면서도 쉽사리 읽히지 않았다. 어려운 단어들을 사용하지는 않아 가독성은 좋았지만 플롯이 선명하지 않은 탓에 한 번 읽고서는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단편들이 있었다. 표제작인 「형사 K의 미필적 고의」나 「관리인」, 「실종」 이 거기에 속하는 단편들이었다. 소설 속 주인공과 주인공이 가공하고 있는 픽션, 혹은 과거들이 처음에는 일직선을 달리다가 조금씩 혼재되기 시작하더니 나중엔 서로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뒤엉켰기 때문이었다. 안과 밖을 구별할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단편 속에서 이야기들이 뒤엉켜 혼란을 야기했다. 우리가 엄청난 졸음에 시달릴 때 꿈에서 하는 말인지 현실에서 하는 말인지 구분하기 힘든 것처럼 위의 세 단편들에서는 주인공이 만들어내는 픽션이나 시나리오, 무의식이 시시때때로 개입하며 이야기를 불확실하게 만든다.

그와 달리 다른 4편의 단편은 이해가 쉬운 단편들이었다. 네 편의 단편들은 플롯을 꼬기보다는 알레고리를 사용해 소설을 서술하는 방식이 주를 이루기에 읽는데 수월함이 느껴졌던 단편들이었다. 특히 기억에 남았던 단편들이 있었는데, 「카라반」과 「잡식동물의 딜레마」, 「피터의 편지」였다.

「카라반」 같은 경우는 중년 여성이 동생에게 느끼는 열등감과 불편함, 그리고 남편에 대한 의심 같은 감정들을 카라반을 활용해 서술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잡식동물의 딜레마」는 좀 단순한 상징이라고 느끼기도 했지만 자신의 의견이 배제된 폭력적인 투견장에서 주인공이 느끼는 무력함과 분노가 쥐로 상징화해서 나오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또 폭력적인 투견장 분위기에 대한 선연한 묘사 덕분에 단편에 그 분위기가 짙게 배어져 나오고 현장감이 느껴지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피터의 편지」는 갱들이 활개치던 1970년대 미국 뉴욕을 배경으로 빌려와 마치 실제 하는 역사인 양 꾸며내고 그것을 주인공인 '강'과 함께 엮어내는 게 재미있게 느껴졌다. 역사적인 사실에 허구를 그럴듯하게 섞어내고 현재의 인물들과 엮어 하고 싶은 주제를 전달하는 방식의 소설을 무척 좋아하는 편이라 이 단편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첫 소설집을 읽는 건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그것도 이제 막 출간된 첫 번째 작품인 경우엔. 그 처음이 미숙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도리어 그 미숙함이 흥미로운 요소가 되기도 하고 작가의 방향성을 가늠해보는 지표 역할을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모든 첫 작품이 마냥 좋게 느껴지는 것도 아니긴 하다. 그렇지만 이춘길 작가의 이번 첫 소설집은 앞으로 나올 다른 작품들을 기대해보게끔 만들었다.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을 빠른 시일 내로 만나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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