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블러드
임태운 지음 / 시공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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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 오디세이 장르는 사실 익숙한 장르가 아니었다. <부산행>이나 <살아있다>와 같이 대중적인 좀비 영화가 여럿 나와 좀비물에는 좀 익숙해졌다지만 스페이스 오디세이나 SF 장르는 완전히 생소한 장르였다. 그나마 아는 걸 끌어모으면 베르나르 작가나 <스타워즈>, <스타트렉>, <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정도뿐이었다. 거기에 과학 용어만 나오면 새하얘지는 머리까지. 화이트블러드는 나에겐 완전 미지의 영역에 속한 책이었다.

그런 걱정들은 막상 책을 집어 드는 순간 까맣게 잊혔다. 읽기 시작한 순간 술술 넘어가는 가독성과 높은 흡입력은 손에서 책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SF 물을 거의 보지 않았던 사람도 별 무리 없이, 심지어 열광하게 만들 정도로 소설은 매혹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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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가 막바지로 접어들 무렵, 지구는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특수광견병 Z19, 즉 좀비 바이러스가 전 지구적으로 창궐해 황폐화된 것이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지구와 가장 환경이 비슷한 카난이라는 행성으로 탈출을 도모한다. 게르솜이라 이름 붙인 '첫 번째 방주'에 선택받은 4만 4천 명을 탑승시켜 먼저 우주로 띄워보내고, 40년이 지난 후에 '두 번째 방주'인 엘리에셀을 만들어 그 뒤를 따라간다.

엘리에셀에 탑승한 사람들은 40년 전에 풍부한 자원을 가지고 출발한 게르솜이 카난에 무사히 정착해있기를 바라지만 그런 그들의 기대는 우주에서 표류하고 있는 게르솜을 본 순간 꺾인다. 통신도, 연락도, 심지어는 게르솜을 운영하는 인공지능마저도 연결이 되지 않자 엘리에셀을 운영하는 인공지능 마리는 엘리에셀에 탑승한 백혈인간들을 게르솜에 보내기로 한다. 백혈인간인 천이도와 카디야, 보테로는 우주를 표류하는 게르솜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내고자 선내 안으로 진입한다. 인류의 운명을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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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서 가장 흥미로운 설정 중 하나는 바로 백혈인간이라는 존재이다. 화이트블러드라는 제목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이 소설을 이끌어나가는 인물은 하얀 피가 온몸에 흐르는 백혈인간이다. 원래는 빨간 피가 흐르는 보통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었지만 혈관 속 나노봇을 통해 인간의 신진대사에 관여하며 생존능력을 높여주는 백혈시술을 받아 백혈인간이 된 그들은 신체능력이 다른 사람들보다 월등히 뛰어나고 좀비에 물려도 감염되지 않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굉장히 매력적인 존재이지만 백혈시술 자체가 좀비의 위협과 어떻게 될지 모르는 우주여행을 위해 인류가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에 백혈인간들을 존재로 대접받는 게 아닌 철저히 도구로 취급받는다. 완전히 밑바닥 계급에 속해있는 것이다. 백혈인간들은 사람들이 자신들을 도구화하고 시술의 낮은 성공 가능성을 알면서도 카난으로 향하는 우주선에 탑승하기 위해 백혈인간이 되기를 자처했다.

주인공인 천이도와 그와 함께 게르솜을 탐색하는 카디야와 보테로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에게 제대로 대접을 받지도 못하는 이들에게 인류의 운명이 달려 있다는 점은 사람들의 이기심을 극대화하며 부각시키는 동시에 소설에 한층 더 몰입할 수 있게 해준다. 밑바닥에서 좀비의 위협, 생존의 위협에 맞서며 처절히 생존을 해오고 게르솜에서 또 다른 위협에 맞서 싸우는 이들에게 몰입을 하지 못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백혈인간의 존재는 사람들의 이기심을 부각시키고 인류의 생존이 위협을 받는 상황임에도 계급으로 사람을 나누고 차별하는 사회를 여과 없이 보여주는 역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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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캐릭터들 게르솜 안을 탐색하면서 내는 시너지도 매혹적이다. 각자 뚜렷한 개성을 지닌 세 캐릭터들이 서로 힘을 합쳐 위기를 돌파하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쾌감은 그 어떤 것과 비교해보다도 매력적이다. 만화 원피스 속 루피와 동료들의 모험을 지켜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선사한다. 처음에는 의심하고 다투기도 하지만 하나하나 어려운 상황들을 돌파하면서 그들은 서로에게 그 누구보다도 믿을 수 있고 신뢰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간다.

그들이 벌이는 액션 활극 역시 상당한 쾌감을 선사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백혈인간인 그들은 신체능력이 강화되어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엄청난 체력과 액션을 선보인다. 좀비떼가 몰려드는데도 그들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무기로 강력하게 대응한다. 그 과정이 상당히 촘촘하게 그리고 선명하게 서술되어 있어 머릿속에 그들이 벌이는 스릴 있는 액션신이 자동적으로 떠오를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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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은 좀비물과 SF 물을 그 어떤 이질감도 없이 잘 섞어놨다는 점이다. 좀비 아포칼립스와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적절히 결합하면서 기존 좀비물에서 느꼈던 것과는 다른 색다름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불편한 현실과 아름다운 꿈, 인간의 자유의지, 인공지능과 사람의 결합 등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배경으로 등장하는 다양한 과학기술은 많은 생각을 자아내기도 했다. 무거운 고민을 던지는 SF 적 장치들과 그럼에도 사라지지 않는 인간에 대한 희망. 작가는 소설 속에서 이 두 가지 요소를 적절히 배치시켜놓으며 한편으로는 고민할 거리를, 한편으로는 웃음을 전달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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