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생리학 인간 생리학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류재화 옮김 / 페이퍼로드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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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생리학이라는 제목을 처음 봤을 땐 당황스러웠다. 저자인 발자크는 너무도 유명하지만 공무원 생리학이라는 저작은 생소함 그 자체였으며 생리학이라는 표현 역시 자주 쓰는 표현이 아니라 생소하긴 마찬가지였다. 당황스러움을 안고 생리학이라는 단어를 검색해보니 다음과 같은 해석이 나왔다.

생리학 : 생물의 기능이 나타나는 과정이나 원인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설명하는 생물학의 한 분야이다.

생물학에 쓰이는 용어를 어째서 발자크가 사용한 걸까? 그 의문은 책에 나와있는 설명을 읽다보면 풀린다. 발자크가 사용한 생리학은 19세기 프랑스 사회 전반을 풍미한 장르를 의미한다고 한다. 그 때 당시 생리학이 유행하며 여러 작가들이 제목에 생리학이 붙은 시리즈를 냈다고 하는데 사회적 직업 및 계층, 계급을 통해 여러 인물상을 묘사하고 풍자하며 다양한 사회현상을 통찰했다고 한다. (11쪽 설명 인용)

생리학처럼 사람과 사회를 동물이나 식물을 연구하듯이 관찰하며 분석해 분류하고자 한 것이다. 또 그 당시 유행했던 생리학 출판물 형식처럼 두껍지 않은 두께로 인간을 유형적으로 분류하여 표와 도식을 만들고 삽화를 넣어 출판했다고 한다. (208쪽 작품 해설 인용)

생리학에 대한 의문은 이제 풀렸다. 근데 여기서 또 하나의 의문이 꼬리를 물고 등장한다. 발자크는 어째서 공무원이라는 직업과 그 사회를 소재로 삼은 것일까? 그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이 책이 출판된 시대적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시대적 배경

프랑스 문학에 유행이었던 시기는 1840년~1842년 무렵이었다. 공무원 생리학은 이 시기에 출판된 책인데 그 당시 시대적 상황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루이16세를 몰아낸 유명한 프랑스 혁명 이후 나폴레옹이 나타나 스스로 황제가 되었지만 곧 물러났고, 이후 보수적인 왕당파 세력이 왕권을 잡았다. 프랑스 혁명으로 이룩했던 것이 퇴행한 것인데 이에 대한 반발로 1830년 7월 혁명이 일어나 왕정의 권한이 축소되었고 그마저도 1848년에 일어난 2월혁명으로 아예 사라져 공화정을 기반으로 한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공화파와 왕정파. 혁명을 요구하는 목소리와 왕정 복고을 원하는 목소리가 뒤엉켜있던 혼란스러운 시기에 생리학 시리즈가 큰 인기를 얻은 것이다.

문학의 흐름

또한 이 시기는 문학의 흐름이 낭만주의에서 사실주의로 넘어가던 시기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낭만주의 문학의 예시는 레미제라블이다. 이 낭만주의는 스탕달을 거쳐 발자크, 플로베르로 넘어오면서 사라지고 사실주의가 문학의 대세가 된다. 이러한 문학의 흐름은 그 당시 사회상과 맞물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실주의 문학을 추구했던 작가들은 이전 낭만파와는 달리 사회와 인간을 그대로를 소설에 담아내고자 했다.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르나 지금 서평을 쓰고 있는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이 대표적인 사실주의 문학이다.

앞서 언급한 혼란했던 시대상과 발자크가 추구했던 문학적 경향성을 간단하게 알고 나면 그가 왜 공무원 생리학을 썼는지 이해를 할 수 있다. 왕권 복고 움직임과 공화정을 열망하던 시대적 상황 속에서 공무원 사회를 관찰하는 행위는 프랑스 사회 단면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시간에 개구리 실험을 하고 관찰한 바를 옮겨적는 것처럼 발자크는 공무원 사회와 그 속을 이루고 있는 공무원들의 살갗을 깊숙이 벗겨내 관찰하고 기록한다. 차이가 있다면 발자크의 글을 개구리 실험보다도 지극히 풍자적이며 유쾌하다는 점이다.

공무원을 본격적으로 관찰하기 이전 발자크는 공무원 정의를 먼저 내리고 시작한다. 발자크가 내린 정의는 이렇다.

살기 위해 봉급이 필요한 자, 자신의 자리를 떠날 자유가 없는 자, 쓸데없이 서류를 뒤적이는 것 외에 할 줄 아는 게 없는 자.

12쪽

뒤이어 사무용 책상에 앉아 온종일 뭔가를 끼적이는 자가 공무원이라고, 사무용 책상은 그가 사는 알껍데기라는 정의까지 덧붙인다. 아주 신랄한 어조로.

그는 권위적이고 효율적이지 않은 공무원 사회를 설명하며 왜 그렇게 행정이 느리게 돌아가는지, 어째서 그렇게 관료주의가 빡빡한지를 차근차근 설명한다. 또 그 사회를 이루고 있는 부품인 공무원들을 이야기한다. 이 때 그는 공무원 개별에 집중해 하나씩 설명한다기보다는 직종이나 일정한 계층에서 보여지는 특성별로 묶어 그들을 분류하고 설명한다. 파리 공무원과 지방 공무원을 나누고, 임시직과 비임시직을 나누고, 관공서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을 각자 계급별로 나누고, 미혼 여부로 나누거나 아니면 성격이나 특성별로 나누어 설명하는 식이다.

발자크가 분류한 공무원 설명을 보다보면 19세기 프랑스 공무원 사회를 다룬 것임에도 현재와 오버랩되는 문장들이 여럿 보인다. 대표적인 부분이 임시직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뒤를 지켜주는 연줄 하나 없이 들어온 가난한 임시직만이 유일한 임시직이라고 말하며 그들의 어려운 상황을 묘사하는 부분을 읽으면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을 할 수밖에 없다.

임시직들의 천진함도 오래 가지 못한다. 청년은 곧 차장과 자기 사이에 존재하는 어마어마한 거리를 알게 된다. (···) 임시직은 경력을 쌓아도 소용없다. 다른 공무원을 통해 이런 불평등을 실감하게 된다.

111쪽

이외에도 승진보다는 자신의 취미에 시간을 쏟는 수집가 유형이나 사무실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는 퇴직 공무원, 승진을 위해 노력해 국장까지 이른 이들에 대한 묘사는 현재와 교집합을 이룬다.

생리학과 풍자문학의 형식을 취하고 있기에 발자크의 문장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신랄하며 건조한다. 가끔은 너무 비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신랄한 풍자 속에서 드러나는 발자크의 예리한 비판과 혼란스러운 시대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은 그런 생각을 상쇄시킨다. 이렇게 신랄한 어조가 아니면 이렇게 날카로운 글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무엇보다도 정확히 현상을 파악하는 발자크의 시선을 따라가다보면 격렬한 동의를 보낼 수밖에 없다.

아, 나도 안다. 지금 이 시대에 행정직만큼 선망하는 게 없다는 것을.

36쪽

19세기 프랑스 사회를 뛰어넘어 현재 대한민국 사회까지 관통하는 이런 문장 앞에서는 두 손을 들 수밖에 없다. 그 당시 프랑스 사회를 풍자하기 위해 책을 쓴 발자크는 여전히 유효하다.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서. 이것이 바로 지금 시대에 사는 우리가 이 책을 읽어봐야 하는 이유이다. 고전은 시간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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