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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 박스
융 지음, 윤예니 옮김 / 바람북스 / 2023년 5월
평점 :
그런 순간이 있다. 삶의 흐름이 끊기는 순간.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거지? 하는 순간 말이다.
<베이비 박스> 표지의 주인공과 그 아래 흐릿한 또 한 사람.
인생이 모호해지는 것이 아니라 내 존재가 모호해지는, 그런 순간에
존재의 뿌리가 흔들리면 내 온 존재가 없어져 버릴 듯한 두려움이 느껴지기도 하니까.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어디서 와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
또렷하고 명료하게 표현할 자신만의 언어를 가진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
알 수 없는 그 모호함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해 내는 데는 아픔이 따른다.
엄청난 출생의 비밀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진짜 나를 만나려 할 때
많은 용기가 필요하지 않나.
두려움을 이기고 베이비 박스가 있는 곳을 찾아가는 주인공은
진짜 나를 찾고자 하는 우리의 모습이 담겨 있다.
누구도 대신 해 줄 수 없는 일, 그렇게 해서 찾은 내 존재의 이유를 아는 사람은
스스로 끊어진 삶의 흐름을 이어갈 수 있다.
시작은 혼자 했더라도, 막상 한 발자국만 떼어보면
나의 사람들이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던 듯 나를 맞이하는 따뜻함이
<베이비 박스> 곳곳에 그려져 있어 마음이 포근해졌다.
우리 각자가 힘든 이 삶을 견뎌낼 시작점은 내 안에 있지만
우리 곁엔 그런 시작점을 가진 친구와 가족이 있으니-
외롭지 않은 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