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싱어의 윤리학과 불매운동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시간이 별로 없으니 간단하게 쓰지요.

피터 싱어의 공리주의적 입장(공리주의적 근본주의라고 해야 할지)에 대한 부분은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입니다. 거칠게 '한 명을 구하기보다는 다섯 명을 구하는 것이 옳다', 이렇게 이해하겠습니다.

하지만 피터 싱어의 경우를 이번 사태에 적용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과연 이 상황이 제로섬 게임인가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습니다. 로쟈님께서는 현재 알라딘 불매운동이 제로섬 상황에서의 선택이라고 가정하고 계신 것 같은데, 제가 볼 때는 그렇지 않습니다. 알라딘 불매운동이 양자택일 상황이거나 제로섬 상황(한 사람을 돕는 일이 다른 사람을 돕지 못하게 만드는 경우)이 되기 위해서는 대단히 비현실적인, 교과서에 예시로나 나올 법한 조건이 필요합니다. 몇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겠지요.

1. 현재 교보, 예스24, 알라딘 등 여러 인터넷 대형 서점에서 동시에 소비자총파업이라 할 만한 불매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 이 경우 알라딘 불매를 중지하고 교보로 불매운동을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습니다. 교보의 상징적 중요성이나 인력 고용 상황 등을 고려해 볼 때 교보로 집중할 경우 '한 사람보다는 다섯 사람을 구할 수 있을 것'이며 그 쪽이 공리주의 원칙에 부합합니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그렇지 않습니다.

2.  알라딘에서 현재 불매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번 사건이 아니라도 언제 어디서건 소비자운동 또는 더욱 능동적이고 생산적인 일에 투신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분들이 지금 알라딘 불매운동을 벌이는 것은 다른 더욱 중요한 일들을 포기하는 행위다. 또는 지금 불매운동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다른 더욱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는데 불매운동 탓에 그 기회를 놓치고 있다.
- 불매운동을 하는 분들에게 실례가 될 수도 있지만, 이런 상황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분들이 아주 투철한 직업 활동가나 프로그램이 입력된 기계가 아닌 이상, 특정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한다고 해서 다른 상황에서도 똑같은 일을 하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후자의 가정도 마찬가지겠지요. 

3. 알라딘 불매운동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공리주의적으로 더욱 중요한 운동들, 예를 들면 이랜드 파업 등 비정규직 투쟁 전체 전선의 행보에 방해가 되고 있다. 또는 불매운동으로 인해 정작 알라딘에 근무하는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상황이 더욱 열악해졌다.
- 증거가 있습니까?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알라딘 불매운동이 (알라딘 회사측을 제외하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거나 또다른 누군가의 기회를 빼앗고 있다는 주장에는 근거가 없다는 것입니다. 김종호 씨가 스스로 문제제기의 주체가 되었다는 사실이 다른 누군가의 이익을 빼앗았다는 증거도 없습니다. 오직 실현되지 않은 그 누군가의 추상적인 이익(김종호 씨가 먼제 문제제기를 하는 바람에 언론지상에 문제제기의 기회를 놓친 사람이 있다면)만을 가정해볼 수 있을 뿐입니다. 알라딘 불매운동이 다른 누군가의 이익을 박탈한다고 주장하고 싶다면, 그것이 과연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대충이라도 계산해서 내놓는 것이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의 의무겠지요. 아마 피터 싱어라도 이런 것을 계산하긴 힘들 거라 생각합니다.  

또한 작년 조중동 광고 불매운동으로 인해 한겨레, 경향의 사정이 더욱 열악해졌다는 사정을 불매운동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예로 드셨습니다. 그 이야기는 (카더라 수준이지만) 저도 여러 군데서 봤습니다. 하지만 알라딘 불매운동을 그 경우와 비교하는 것은 적합치 못합니다. 만일 알라딘 불매운동으로 인해 오프라인 소형 서점들에 불똥이 튀기라도 했다면야 괜찮은 예시가 되겠지만요.

신문의 경우 '광고 비중을 약화시키고 대신 구독자를 늘린다'는 대안이 정석입니다. 그리고 한겨레, 경향의 경우 그런 운동을 제안하고 캠페인을 벌일 만한 존재 가치가 있습니다. 하지만 알라딘의 경우도 그럴까요? 지금 알라딘은 조중동 광고 불매 때문에 타격을 입은 한겨레, 경향 포지션이 아닙니다. 소비자들이 알라딘의 제무제표 상황을 걱정해줄 상황이 아니라는 이야깁니다. 사장이 사재를 털든, 책값을 올리든, 경영합리화를 하든, 윤리적 소비 이미지를 더욱 확대해서 '순수한 알라딘'으로 거듭나든 그건 회사가 결정할 사항입니다. 소비자가 할 수 있는 일은 회사의 결정이 최대한 공공성을 높이는 결과가 되도록 압력을 넣고, 또 회사의 결정이 내려진 뒤 그에 따라 다시 운동의 방향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회사가 무슨 결정도 하기 전에 소비자들한테 '네가 비정규직 돕는답시고 불매운동 하면 책값이 올라간다, 그래도 할래? 넌 그돈 주고 살거냐?' 라니요...

물론 불매운동을 하시는 분들 중에는 알라딘이 '우리의 한겨레'나 '우리의 생협'이 되어주길 바라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 정도는 아닙니다만 그런 바람 자체가 터무니없다고 폄하할 생각은 없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제로섬 상황'이 아닌 한 그런 이상주의가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것은 아니니까요.

제 글의 일부를 인용하시면서 제가 '로쟈 안티'라고 하셨는데, 괜히 썼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전혀 전달되지 않고 독설만 전달되었다면 제 글에 분명히 문제가 많았던 것이고 글로서는 실패한 글입니다. '망가져서 한심하다'가 아니고 "망가지는 게 안타깝다"였습니다. 그거나 저거나 똑같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저도 워낙 게으른지라 웬만해선 귀찮은 일을 하진 않습니다. 건방지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솔직히 일전의 그 글만은 잠가 주시길 바랬습니다. 그 글을 보고서 상처받고 치를 떠는 분도 봤고 해서.

더 이상 여기에 글을 쓸 일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부디 건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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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03 15: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03 1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