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발론 연대기 - 전8권 세트
장 마르칼 지음, 김정란 옮김 / 북스피어 / 2005년 12월
평점 :
품절


이제 겨우 한번 읽고 리뷰를 쓰자니 영 어색하다. 아직도 제대로 머리속에 정리가 안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도 대충이라도 써본다.

<아발론 연대기>의 시대배경은 대략 6세기 경이다. 공간은 웨일즈를 비롯한 브리튼과 아르모리크(현재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다. 그러나 실제 시대배경은 기원전부터 10세기 이후까지라고 보아야 한다. 작품 속에 수천년의 문화,생활,정신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더왕,성배 등에 관한 수많은 저작은 수세기에 걸쳐 쓰여졌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작품에는 기독교 세계관이 은연중에 깊숙히 스며들어있다. 더불어 이전의 켈트적인 것들이 상당부분 훼손,변형되어 있기도 하다. 작가는 이런 왜곡된 현실을 상당부분 복원하고 있다. 그리스 신화의 경우는 그 자체가 기독교 문명과 상관없는 고대문화의 정수로 그대로 보존되었지만 아발론 전설은 그렇지 못했다.

이 작품에는 크게 세가지 세계가 공존하고 있다. 하나는 고대 켈트 전설,문화다. 거석 문화와 청동기 문화, 모계 중심 사회의 유산 등이 작품 곳곳에 남아있다. 여기서 성배는 풍요를 상징한다. 하나는 기독교 문화다. 성배,사제,수도원,신 등이 작품 곳곳에 나온다. 여기서 성배는 예수의 피를 받았던 에머랄드 잔이 된다. 또 하나는 중세 로망,낭만적 기사도다.

그리스 신화에도 모계사회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한 그리스 군, 메넬라오스가 헬레네를 죽이지 않고 스파르타로 고이 모셔와서 계속해서 떠받든 것은 그녀가 납치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녀는 자발적인 의사로 스파르타를 떠나 트로이로 갔다. 메넬라오스는 스파르타의 왕이지만 그의 왕권은 전적으로 스파르타의 공주인 헬레네에게 속해있기 때문이다. 헬레네를 죽인다는 것은 스스로 스파르타 왕이기를 포기한다는 의미가 된다. 그의 형이자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 역시 마찬가지다. 그도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를 대신해서 미케네의 왕권을 행사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아내에게 살해당하고 아내는 새남자와 함께 미케네를 통치한다.

이런 모계사회의 전통이 <아발론 연대기>에도 고스란히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틴타겔의 왕비 이그레인은 또다른 알크메네,클리타임네스트라다. 아더의 아버지 우터는 그녀의 남편의 죽음으로 그녀와 결혼하고 왕권을 확립한다. 아더 역시 이 전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는 아버지와는 반대의 길을 걷는다. 그의 아내 귀네비어는 아르모리크 출신 호수의 기사 란슬롯과 사랑에 빠진다. 이것은 단순히 남녀의 사랑,질투의 문제가 아니다. 아더는 브리튼을 대표하고, 란슬롯은 아르모리크를 대표한다. 귀네비어는 이들에게 왕권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아더에게 이 문제는 왕권을 둘러싼 왕국의 안위에 관한 중대한 문제가 된다. 아더를 제외한 대부분은 귀네비어와 란슬롯의 사랑을 눈치채지만 침묵을 지킨다. 이 점은 아더 역시 마찬가지다. 그도 어느 정도 사태를 알고있었다고 보는게 맞다. 그러나 이 문제가 수면에 떠오르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 역시 침묵하는 것이다. 이 문제가 논쟁거리가 되는 순간 왕국은 두조각(아더와 란슬롯)이나 세조각(아더,란슬롯,귀네비어)으로 갈라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안한 균형,평화를 깨는 세력 또한 반드시 존재한다. 그래서 왕국이 그 절정을 지나자마자 문제가 터진다.

란슬롯은 브리튼 안에서 그의 지지세력과 함께 아더 왕에 맞서 싸운다. 어제까지 동지였던 기사들이 적이 되어 피를 흘린다. 물론 이때 왕권을 상징하는 귀네비어 왕비는 그와 함께 있다. 란슬롯은 아더 왕과 휴전을 하는데 그 조건은 귀네비어를 아더 왕에게 돌려주는 것(물론 그녀의 안전,지위의 보장도 포함해서)과 자신들이 고향 아르모리크로 무사히 귀환하는 것이다. 귀네비어를 돌려준다는 것은 아더를 브리튼의 왕으로 인정한다는 의미도 된다. 아더가 여기서 끝냈다면 그의 왕국은 더 오랫동안 번영을 누리며 존속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더는 휴전에도 불구하고 복수를 해야한다는 가웨인의 설득에 넘어가 군대를 이끌고 아르모리크로 진격한다. 자신의 직속 영토에서도 물리치지못한 란슬롯을 그의 영토에서 이긴다는 것은 그야말로 허망한 꿈일 뿐이다. 아더의 후계자 가웨인은 질투심과 복수심에 불타 이성을 잃고 란슬롯에게 일대일 대결을 요구한다. 란슬롯이 간곡히 우정을 바탕으로 평화를 요청하지만 그는 끝내 거부한다. 그리고 대결 끝에 가웨인은 치명상을 입고 죽어간다.

그 사이 브리튼 본토에서는 전권을 위임받은 모드레드가 귀족들을 매수하고, 아더 왕이 죽었다는 문서를 위조해서 스스로 왕이 된다. 그는 귀네비어 왕비에게 자신과의 결혼을 강요한다. 여기서도 왕비가 왕권을 상징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그녀가 마음씨가 착해서, 백성들에게 많은 은혜를 베풀어서, 백성들의 사랑을 받기 때문에 그녀를 자기 편으로 만들기 위해서라고 할 수도 있지만. 아더는 이 소식을 듣고 서둘러 브리튼으로 돌아오고 운명의 대결이 펼쳐진다. 이 대결에서 모드레드는 죽고 아더 왕도 치명상을 입는다. 엑스칼리버는 호수의 부인에게 돌아가고 아더는 누이 모르간을 따라 아발론으로 떠난다.

<아발론 연대기>에는 아더,멀린,가웨인,란슬롯,보호트,퍼시발,갈라하드 등의 남자 왕,기사,영웅,마법사,현자 뿐만 아니라 케리드웬,이그레인,모르간,귀네비어,비비안(호수의 부인),오넨,라우리 등의 여성들도 대단한 활약을 펼치고 있다.  이 작품은 결코 단순한 중세 로망이 아니다. 게다가 남성들만 나오는 삼국지류도 아니다. 역사란 것이 여성의 세계사적인 패배를 기록하고 있다는 말처럼, 이 작품에서도 여성이 지배했던 시절부터 지배를 잃어가는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가 있다. 기독교가 어떻게 남성우월,가부장제를 확립해 갔는지도 엿볼 수 있다. 이 모든 점은 원주와 역주를 통해서 더욱 뚜렷히 부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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