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톤의 표지가 깔끔하다.
책을 받고 내용을 천천히 읽어가다가 맨 앞장으로 돌아가 작가 소개글을 살펴봤다.
사진 속 얼굴이 무척이나 앳돼보인다.
김 준.
이름이 낯설어 잠시 검색을 해보니... 92년생이란다.
그리고 이 책은 그의 5번째 에세이집이다.
거의 매년 한 권씩 책을 내고 있는 꽤 부지런한 작가다.
이렇게나 젊은 작가가 이토록 삶의 여백이 가득 담긴 글을?하는 의문이 일어나는 찰나, 나이와 생각은 비례하지 않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나의 모습이 보인다.
이런 글을 뱉어내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을 자신 안으로 침잠했을지... 책 곳곳에서 그 흔적들이 가득 묻어나온다.
최근들어 20~30대 작가들의 글을 접할 때가 있는데... 이렇게 예리한 감각으로 솔직하게 감정들을 잡아내는 부분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관계 속에서 자신을 지키려면 자주 다정한 동시에 때로 까칠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깊이 공감할 줄 알면서도 거절에 능숙한 사람.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조언하는 사람. 자기 색깔을 확고하게 가져가면서도 사회에 잘 스며드는 것도 중요하다.
사람들과 너무 가깝게 지내면 쉽게 대하는 이들이 생기고, 너무 멀어지면 절해의 외딴섬처럼 혼자가 되어 버린다.
- P.72 「가는 실 위를 걷는 사람처럼」 中에서
나이가 들면 좀 쉬울 줄 알았는데...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깨달아지는 것은 평생 갈 사람과 스쳐 지나갈 사람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
그래서 이제는 조금은 심플해진 인간관계가 오히려 더 편해지는 것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얻게 되는 지혜가 아닌가 싶다.
타인의 행복을 염려하는 동안 나 자신이 만신창이가 되고 있는지 몰랐어.
·····(중략)·····
정이 많다는 게 되려 약점이 될 줄이야.
뒤늦게 나 자신을 위해 살아 보기로 결심하지만 그간 살아온 관성 때문에 또다시 호의를 자처하고 상처 입게 되더라.
포옹과 포용의 영역에서 살아가고 싶지만 세상은 아직 날 선 듯 차갑고 데워 놓은 마음은 둘 곳이 없는 걸.
- P. 91 「자화상 」 中에서
다른 사람도 내 마음과 같으려니 하고 생각하다가 뒷통수를 몇 번 맞고나면, 세상은 나와 타인으로 정확하게 나눠지며, 내가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를 알게 된다.
이타심이 강하다는 것이 때론 약점으로 작용하는 세상. 착하게 살아온 삶의 방식을 후회하도록 강요하는 세상.
그것은 그 누구에게도 좋을 수 없는데... 세상은 우리의 바램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