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순서대로 읽으면 가장 좋겠으나 별도로 관심있는 철학자가 있다면 따로 읽어도 무방하다.
책에는 다양한 철학자들이 나오지만 아무래도 이동의 자유가 제한을 받고 있는 시기다보니, 진정한 자유를 몸소 보여준 에픽테토스가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들어온다.
에픽테토스는 현재 터키 남부 지역 히에라폴리스에서 노예 여성의 아들로 태어났다.
대부분의 다른 스토아철학자들과는 출발부터가 달랐다.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신체조차도 온전히 그의 것이 되지 못한 상황이었기에 마음에 오롯이 자유가 새겨지게 된것은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였으리라.
에픽테토스에게 있어서 자유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매일 힘들게 씨름하고 쟁취해야 하는 현실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는 인생은 한 편의 연극과 같다고 말한다.
"가난한 사람, 장애인, 총독, 아니면 일개인을 자연스럽게 연기해서 극작가를 기쁘게 할 수 있다면, 잘 연기하는 게 각자가 해야 할 일이다. 배역을 선택하는 것은 우리의 영역이 아니다." (P. 317)
그는 인생의 최고 과제는 통제할 수 없는 일과 통제할 수 있는 일을 식별하고 분류하는 것이라고 한다.
즉, 세상에는 손쓸 수 없는 일이 너무나 많기에 그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시도를 멈춘다면, 역설적으로 진정한 행복과 자유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이 말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혈기가 넘치던 시절에는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다는 자만심도 있었기에 이런 말들은 뭐랄까...나의 한계를 규정짓는 숙명론적인 사고라고 무시를 했던 것 같다.
그러나 파도가 모난 돌을 부드럽게 만들듯이 세상은 시련이라는 이름으로 마음을 다스리게 만든다.
지금은 이 말이 가진 의미가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아마도 삶에서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해야 하는 진짜 이유는, 우리의 인생이 한정된 시간속에서 한번 뿐이라는 사실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에픽테토스는 모든 사물에는 양면이 있다고 했는데 한쪽만 보면 답이 안 보이던 것도 다른 쪽을 보면 쉽게 해결된다고 말한다.
아무리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일지라도, 처한 조건과 관계없이 우리는 상황을 어떻게 바라볼지 선택할 수 있다. 매일 여러 사람과 상대하면서 그들의 어떤 면을 바라볼지 결정하는 것이, 결국 우리 자신이 어떤 인생을 살지,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될지를 결정한다. (P.324)
지금의 시기를 사람들은 답답해하며 허송세월을 보내지만 또 어떤 이들은 이 시기를 이용해 새롭게 한단계 도약하는 기회로 삼기도 한다.
같은 세상을 살아가지만 어떤 눈으로 바라보느냐는 결국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는 것.
불안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깊이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지 않나 싶다.
에픽테토스는 30여 년을 노예로 지내다 자유의 몸이 된 이후로 순수하게 학문에만 전념하게 되면서, 기존 철학자들과는 다르게 오직 학문을 업으로 삼은 최초의 스토아 철학자로 남는다.
에픽테토스가 직접 쓴 저서는 없지만, 그의 제자인 아리아노스가 스승의 가르침을 필기해 정리한 것이 <편람>이다.
한손에 들고 다닐 수 있는 책을 의미하는데 항상 가르침을 '손에 쥐고 다녀라'라고 한 에픽테토스의 가르침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원래는 8권이었으나 현재는 그 중 4권만 전해지고 있는데 후에 이 책은 최초의 철인황제라 불리운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에게까지도 전해진다.
국내에는 <에픽테토스의 자유와 행복에 이르는 삶의 기술>, <에픽테토스의 인생을 바라보는 지혜>라는 이름으로 출간돼 있다.
위 제목들을 보는 순간 10여 년 전의 어떤 기억하나가 떠올라 잠시 책장을 뒤져보니 낯익은 이름이 다시 등장한다.
<에픽테토스의 자유와 행복에 이르는 삶의 기술>.
당시 막막한 생활에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방황의 시간을 보내던 중에 만난 책이었는데... 삶에 대해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었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 만난 많은 철학자 중에서도 에픽테토스가 다시 마음을 잡아 끄는 것을 보면... 과거에도 지금도 나는 여전히 자유를 찾아 헤매다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