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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ㅣ 새움 세계문학전집
다자이 오사무 지음, 장현주 옮김 / 새움 / 201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 접하게 된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 「인간
실격」은 많은 독자들이 이미 읽었고, 또 다른 독자들에게는 읽고 싶은 책 목록에
올라가 있는 소설이라서 어떤 내용일지 무척 궁금했다
저자가 소설을 통해 전해 줄 울림에
대해서 책을 읽기 전부터 기대감으로 설레였는데 서문을 읽고, 제1의 수기, 제2의 수기를
읽어가는 동안 다자이만의 독특한 문체와 호흡에 빠져들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강렬한 제목에서 뿜어져 나오는 절망과 우울의
빛깔!
그
빛의 스펙트럼 속으로 나도 모르는 사이 서서히 빨려 들어갔다
순식간에 책을 읽어내려갔고
다시 처음부터 재음미하면서 읽기를 멈추지 않았다
이 소설의 강한 끌림은
무엇일까?
깊은 울림은 무엇에서 연유한
것인가?
보편적인 인간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타인과의 다름을 인정하지도 못한 채 죄의식으로 점철된 청춘을 보내며 절망하고
스스로 파멸해 가는 인간 오바 요조의 파란만장한 삶이 안타까웠다
중얼거리듯 쉼 없이 이어지는
요조의 독백에 마음이 끌리고 어느 순간 나 스스로 요조가 되어 버렸다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인간에 대한 불신,
방탕한 생활, 신분 차이로 인한 결혼 반대, 연이은 자살시도와 동반자살 등 요조의 여러 가지 행적들로 미루어 짐작해 볼
때 다자이 오사무의 실재 삶이 일정 부분 흡수된 자전적인 요소가 짙은 소설임을 알 수 있다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하고 그 후유증으로 인해 그의 작품 속에 허무 의식과 죄책감이 녹아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기에 인간 본성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든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자신의 주장을 내세울 줄도 모르고 거절할 줄도
모르며 참고 포기하는 등 모든 상황을 자신의 잘못으로 치부하는 그의 행동들이 답답했지만 기묘하게도 내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
인간을 극도로 두려워하면서도 끝내 그들과의 관계를 놓지 않고
인간에 대한 최후의 구애로서 택한 익살!
인간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요조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감춘 채 익살로써 사람들과 소통하게 된다
어린 요조의 시선에 맞닥뜨린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 찬
어른들의 세계에 대해 느꼈을 실망감은 성장을 하면서 그 골이 더욱 깊어져 삶의 경계 밖으로 내몰리게
만든다
세상의 위선과 가식 앞에서 그가 취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또한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익살꾼의 가면을 쓰고 자신의 진짜 모습을 숨긴 채 어둡고 참혹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었다
결국 아내 요시코가 현실에서 보기 드문
미덕인 신뢰심 때문에 겁탈을 당한 후 생에 대한 일말의 기대와 모든 살아갈 이유를 놓아버린 요조...
인간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는
순간 인간으로서의 존재 이유를 상실하고 만다
요조에게 있어 인간에 대한 신뢰는 그가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최후의 버팀목이 아니었나 싶다
쉴 새
없이 내뱉는 독백에서 요조 자신이 마음 깊숙이 감추고 살아가는 인간 본성이 드러나고 그의 인간적인 고뇌에 깊은 공감과
애잔함이
느껴진다
자살 직전의 불안한 심리가 전해지는 듯 긴장감이 느껴지기에 읽는 내내 흐트러짐 없이 집중하게
만든다
쉼표 하나도 가볍게 넘기지 않은 섬세한 번역으로 다자이 오사무만의 독특한 문체와 호흡하며 <인간
실격>의 감동을 만났다
다른 번역서로도 읽어봤는데 의역으로 인해 무난히 읽히기는 했지만 다자이 오사무 특유의
문체에서 느낄 수 있는 그 어떤 맛이 느껴지지 않아 별 감흥이 없었다
문맥이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는 직역 부분이 눈에 띄기도 한다
하지만 문장 부호까지 신경 쓴 원문에 충실한 번역이라 작가 고유의 문체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그 독특한 매력을 전달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인간으로서의 자격은 무엇일까?
인간다운 삶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인간, 실격.
무엇이 요조로 하여금 완전히 인간일 수 없게 만든
걸까?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어보는 시간이었다
우리가 내뱉는 말과 행동 속에 진실은 과연
얼마나 자리하고 있을지... 위선과 가식으로 가득 차 상처와 절망으로
얼룩진 인간관계를 돌아보게 된다
자신의 진심을 드러내기보다는 타인의 시선에
집착하고 요조와 같이 각자에게 걸맞은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우리들...
평범한 인간의 삶에서 유리된 채 술과 담배,
여자, 약물로 찌들어 가는 요조의 모습이 정말 싫었지만 그에 대한 끝없는 연민의 정이 품어지는 것은 그가 다름 아닌
우리... 나 자신의 감추어진 일면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리저리
휘둘리는 나의 감정을 어쩌지 못하고 오랜 시간을 책에서 손을 놓지 못했다
지나치게 우울하고 어두운 분위기여서 깊은
절망의 심연으로 가라앉을까 두렵기도 했지만 뭔지 모를 애틋함으로 두근거리기도 했고 상실감, 쓸쓸함, 불안, 폭력성, 위선,
가식, 우울, 절망, 분노 등 인간이기에 가질 수 있는 짙은 회색빛의 감정선들에 대해서도 곱씹어봤다
역자의 말에서 인용한 마타요시 나오키의
이야기는 공감 그 이상의 공감이 가는 내용이다
그는 인간실격의 매력에 이끌려 책을 백번
정도 읽었고 읽을 때마다 밑줄을 긋다 보니 밑줄이 없는 부분보다 그어진 부분이 훨씬 더 많다는 부분과 인간이 각자 가지고 있는
아픔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는 부분이다
나 또한 일주일 동안 연거푸 세 번을
읽었고 읽을 때마다 밑줄을 그었는데 한 문장 한 문장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잘 살고 못 살고에 상관없이, 남녀노소에
상관없이 누구나 본인만이 감당하고 인내해야 하는 고통과 고민이 있음을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남보기엔 하찮고 별일 아닐 수도 있지만
사람마다 그 아픔의 경중은 따져 가를 수가 없다
부유한 가정에서 나고 자라 부족한 것 하나
없을 것 같은 요조지만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저에게는 재앙 덩어리가 열 개 있는데, 그중에서 한 개라도 이웃 사람이 짊어진다면,
그 하나로도 충분히 이웃 사람에게 치명타가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 적조차 있습니다'라고.
"부끄러움이 많은 생애를 보내왔습니다"
쓸쓸함이 배어나는 단 한 줄의 문장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뜨거워지며 눈물이 난다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일은 뭐하나 쉬운게
없다
역자의
말처럼 삶에 대한 긴장의 끈을 한순간이라도 놓아버리면 인간은 폐인이 되거나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치닫게 되겠구나
삶이라는 건 무섭고 살 떨리는 긴장의
연속이구나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깊지 않으면 허물어질
수 있는 약하고 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요조의 내밀한 고백(독백)을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보며 성찰의 시간을 가져 본다
저자의 문체는 신선하고 인상적이었으며 그가
그려낸 서사는 강한 끌림이 있었다
한동안은 다자이 오사무 문학의 매력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
같다
그저,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제가 지금까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 세계에 있어서, 단 하나, 진리처럼 느껴진 것은, 그것뿐입니다
그저,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