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바다에 돌려보내고
고데마리 루이 지음, 맹보용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9월
평점 :
품절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을 가벼이 여기는 것.

사랑이 깊으면 깊을수록 사람들은 대부분 사랑을 업신여기게 된다.

누군가를 믿어버렸던 마음은 마치 떠도는 구름처럼 가벼운 것인 것을.

날개를 펼치고 태평양을 건너고 무역풍에 살랑거리는 하와이의 크고 작은 섬까지 날아갈 수 있을 만큼.

 - 창공의 주소 p32 -

 

핸들을 잡고 앞을 주시하면서 나는 기억해내고 있었다.

상자를 양손으로 끌어안았을 때 '어쩌면 이렇게 가벼울까'하고 생각했던 순간.

종이에 쓰여 있는 과거란 이렇게도 가벼운 것일까.

의표를 찔려 비틀거릴 것 같았다.

가령 그것은 늙어빠진 개를 안았을 때 느끼는 듯한, 가슴을 찌를 수 있는 가벼움이었다.

 - 꿈은 무슨 색 p197 -

 

일본 문단에서 주목하는 여성작가 고데마리 루이의 신간, <사랑을 바다에 돌려보내고>(랜덤하우스,2007)은 시인 출신의 작가답게 감각적이고 절제된 글을 책 속 곳곳에 선보인다. 마치 동화책이나 시화집을 보는 듯하다. 예상처럼 작가는 가슴 절절한 러브 스토리를 감성을 자극하는 감각적인 문체로 쿨하게 그려내며 소설가로 명성을 얻었다. 일본에서 <원하는 것은 당신뿐>으로 시마세 연애문학상을 수상한 후, <원거리연애>와 <삼각관계>를 집필하며 일본 여성독자들이 가장 읽고 싶은 연애소설의 작가로 주목받고 있다.


신간 <사랑을 바다에 돌려보내고>는 <원거리연애>에 이어 두 번째로 한국에 선보이는 연애소설이다. 어린 나이에 결혼에 실패한 후 사랑에 있어서만큼은 겁쟁이가 된 평범한 여성 나즈나가 성격도 외모도 너무나 다른 두 남자와의 사랑 속에서 번민하는 이야기다.

 

“내 마음에 들어오지 말지 그랬어요”_사와키 나즈나
프리라이터로 꿈은 동화작가. 이십대의 첫 결혼에 실패하고 그녀가 찾은 기적과도 같은 행복, 그것은 와타루였다. 이혼을 한 후 홀로 떠난 인도 여행길에서 와타루를 보자마자 쌍둥이 분신을 만난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일본에서 재회한 와타루와 함께 살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지만, 하야세 료스케가 그녀의 인생에 등장하면서 두 사람 사이에서 번민한다.

“당신을 만나길 잘 했어요”_스즈키 와타루
영어학원 강사. 일본계 미국인인 아버지와 일본계 하와이안 혼혈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남자. 이국적인 외모에 풋풋한 야성미를 지녔지만 심성은 고운 소년 같은 사람. 고등학교 시절 ‘일본에 가서 진짜 일본 여자와 사귀고 결혼해서 일본에서 사는 것’을 목표로 정한 후 하와이에서 일본으로 건너 가 인도 여행길에서 만난 나즈나와 동거를 시작한다.

“사랑 때문에 전부를 다 잃어도 괜찮아요”_하야세 료스케
출판사의 편집자. 인도 여행기를 집필하려는 나즈나의 담당 편집자로 처음 만나 동갑내기와 이혼의 아픔을 겪은 사람으로서 묘한 공감대를 느낀다. 대학을 중퇴하고 학원 강사, 신문배달, 주유소 점원, 영어회화 교재 방문판매, 막노동 등을 전전하며 결혼자금을 모아 첫사랑과 결혼했지만 채 1년이 안 되어 아내의 외도로 이혼을 한 아픔을 평생 간직한 채 살고 있다.

 

사랑이 두려운 한 여자와 그녀를 미치도록 사랑하는 두 남자의 이야기, <사랑을 바다에 돌려보내고>.

연애에 정석은 없다. 사랑에도 정석은 없다. 뒤늦게 만난 사람을 먼저 만나 사랑하였더라면 망설임이나 아무런 방황 없이 사랑하였을 텐데. 이 또한 우리가 정할 수 없는 우리들 인생에서의 운명일 것이다. 작가 고데마리 루이의 작품의 공통된 테마의 연결고리는 '연애'. 그 중 이번 작품에서 전하고자 했던 것은 바로 '사랑의 아픔'이 아닐까 한다.

 

'만약에 이 사람을 좋아하게 된다면

나는 소중히 여겨온 것들을

차례차례로 잃게 된다'

주인공 나즈나의 입을 통해서 서로 사랑하지만 그 이상은 발전할 수 없는, 애절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시적인 표현으로. 사랑과 애절, 애달픔과 안정의 감정을 가지고.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을 가벼이 여기는 것'.

평범한 여성 나즈나에게 찾아온 바다를 닮은 남자 '와타루'와 침울한 눈빛을 가졌던 '하야세'.

언뜻 보기에 진부한 표현 같지만 나즈나와 와타루, 나즈나와 하야세라고 하는 두 가지 관계설정에 의해 한층 깊어지는 느낌이다. 안타깝고 애절한 여성의 복잡한 심리를 능수능란하게 그려낸 소설은 심연을 끌어올리는 표현이 여기저기 등장하여 가슴을 쉼없이 뛰게한다.

 

'한 다리를 잃고 기우뚱거리는 세 다리 탁자 같은 절름발이 사랑아, 잘가...'

한 남자를 사랑하면서도 또 다른 남자를 가슴에 품을 수밖에 없었던 사랑의 슬픈 탐색.

애절한 사랑을 경험한 사람에게는 더할나위 없는 작품이 될 것이다.

 

<대안의 그녀>,<공중 정원>으로 유명한 가쿠다 미츠요는

"행복이라고 하는 슬픔.

상실이라고 하는 풍요로움.

이렇듯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이렇듯

사람을 잃는 것이

우리에게는 가능한 것이다. " 라고 말하며 절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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