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가다 나는 딴생각을 한다
하창수 글.그림 / 리즈앤북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반복되는 일상이 지겨워지면, 누구나 딴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공부가 힘들때, 일이 많을 때, 심지어 중요한 계약을 할때도 사람들은 딴생각을 하곤 한다. 실현불가능한 상상부터, 가까운 미래를 준비하는 계획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지 않아도 딴생각은 일상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다.

 

<가끔가다 나는 딴생각을 한다>(리즈앤북,2007)는 따분하고 무료한 일상을 발랄한 딴생각으로 승화시킨 카툰에세이 이다. 그런데, 이 카툰에세이가 심상치 않다. 일상을 외면하기는커녕, 오히려 일상 한가운데를 관통해 뒤집어보는 데서 카툰에세이스트 하창수만의 통렬함이 담겨있다. 통통튀는 발랄한 상상부터 진지한 사무엘 베케트(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대표작품 '고도를 기다리며')의 부조리 연극을 연상시키는 미니픽션들까지 많은 것을 포함한다.

 

가위는 절단의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

절단의 의도를 지닌 인간에 의해 끊임없이

이용당할 뿐이다   -가위의 자살-

 

평소에는 나는 담배를 거의 피우지 않는다.

그러나 창작에 몰두해 있을 때면

하루에 세 갑 정도를 태워 없앤다.

어쩌면 소설은 내가 아니라

담배연기가 쓰는 것인지 모른다.   -담 배 2-

 

자신의 괴로움을 흉금없이 털어놓을 수 있는 대상은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

그렇지 않다면, 가령 아무에게나 마구 털어놓는다면,

자신의 그 괴로움은 진정성을 잃을 것이다.

자신의 괴로움을 무덤까지 끌어안고 가는 것 -

실은 이게 최선이다   - 고 백 -

 

작가의 시선은 거창하거나 먼 미래에 있지 않다. 제목 그대로 작가 자신에 대한 딴생각이다. 소설에 대한 이야기, 술 담배에 관한 이야기, 우리주위의 부조리들.

 

“모르는 게 너무 많은 우리 머리는 왜 늘 이렇게 무언가로 꽉 차 있고,
볼 수 없는 게 너무도 많은 우리의 눈은 왜 늘 벌겋게 충혈되어 있는가?”(p.180)

 

작가가 직접 그린 카툰과 발랄한 깊이의 아포리즘들이 카툰에세이도 격조가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쉽게 읽혀지고 많은 생각을 남기는 내용이므로 일석이조의 효과다. 이어, 저자가 하는 딴생각은 평범한 사람들의 딴생각과는 분명 다르지만, 쉽게 공감이 가는 내용이므로 이 역시 일거양득이다.

 

2-3줄 되는 간략한 딴지부터 5페이지 이상의 픽션까지 하창수의 딴생각은 시공을 초월하고, 장르를 넘나든다. '오랑우탄의 반란' 이라는 가상의 초대형 베스트셀러를 등장시킨 미니픽션에서는 기존의 무엇무엇과 똑같은지, 완전 딴판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베스트셀러 소설 작법을 강의하기도 한다. 몇 십 년 동안 한글을 배우고 있듯, 십 년 넘게 바둑을 배우듯, “배워도 배워도 다 배울 수 없는 것들로, 세상은 그득 차 있다”는 작가의 탄식 어린 깨우침도 엿 볼 수 있다. 책을 읽고 나면, 건조한 일상의 사막에서 오아시를 만난 기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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