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볼 (양장)
박소영 지음 / 창비 / 2020년 10월
평점 :
절판


세상 모든 곳에서 우리는 구간을 나눈다. 비행기는 비스니스석, 이코노미석. 게임에서 유료 회원, 무료 회원. 위 아래로 나눠져있는 이 공간에서 아래에 있는 사람은 위로 올라가고 싶어한다. 하지만 아무나 위로 올라갈 수는 없다. 2배 쾌적함을 누리기 위해서는 2배보다 훨씬 더 많은 가치를 지불해야 한다. 명품 가방이 수십배, 수백배 비싸다고 제품의 완성도가 그것에 달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비행기의 퍼스트 클래스를 조금만 비용을 추가해도 이용가능하다면 그것의 가치는 떨어질 것이다. 감히 올라가지 못할 나무로 만들어 놓아야 그 자리의 고귀함이 유지된다. 유튜브나 블로그의 글을 보면 힘들게 마일리지를 모아서 퍼스트 클래스에 탄 경험을 상세히 풀어낸 영상이나 글이 많다. 그냥 좋은 자리에 한 번쯤 탄 것 뿐인데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모르겠을정도로 상세히 리뷰한다. 그렇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플렉스'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작은 쾌락과 사치를 위해 그 돈을 지불하기엔 보통 사람에게는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

퍼스트 클래스나 명품백 정도는 티끌모아 태산이라고 어떻게든 손에 쥐어볼 수도 있다. 하지만 슈퍼카, 한강이 보이는 주상복합 아파트처럼 평범한 사람은 아예 평생을 노력해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아예 쳐다보지도 못한다. 우리는 대신 모바일 게임에서 유료 회원 패키지를 가입하면서 비주류 사회에서 주류 사회로 들어가는 기분을 간접 경험하기도 한다.


스노볼은 바로 슈퍼카나 주상 복합 아파트와 모바일 유료 게임의 사이의 간극을 잘 조정한 배경이다. 영하 41도의 스노볼 밖은 너무도 춥고 힘들지만 그 안에 들어가면 자신의 모든 삶을 모두에게 공개하는 삶을 살아야한다. 그렇다고 공개하고 싶다고 누구나 스노볼 안에 들어갈 수는 없다. 스노볼 안의 슈퍼스타와 같은 한 여자의 자살로 인해 닮은 외모로 그 안에 입성하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왜 모든 걸 가진 그 여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남들이 보기엔 부족할 것이 없는 그 삶을 왜 내려놨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삶은 적당한 결핍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너무도 치명적인 기본적 가치를 해결할 수 없는 결핍은 삶을 좀 먹기도 한다. 위 아래 세상의 거리를 스노볼이라는 아름다운 물건으로 그려낸 이 책을 한 번 열면 그 몽환적인 세계에 빠져들어 잠시 여행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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