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함의 형태 - 여태현 산문집
여태현 지음 / 부크럼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나에게 다정함을 표현하는 방법은 바로 귀여움이다. 나는 귀엽다는 말이 너무 귀엽다. 이런 말이 참 많다. 의성어나 의태어가 아니더라도 어쩌면 이렇게 딱 맞는 음색이 있을까? 사실은 귀엽다는 말이 귀여운 게 아니라 귀엽다고 말해서 귀여워진 걸 테지만 말이다. 김춘수의 꽃도 같은 맥락일 테지.

말과 언어는 상대방과 소통을 위한 것이다. 우리는 서로 오랫동안 정해진 단어를 써오다 보니 그 느낌에 적응되고 학습되었다. 짜장면이 자장면이 아닌 짜장면으로 법적 자유를 얻은 날, 나는 묘한 해방감을 얻음과 동시에 언어는 소통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자장면 먹으러 가자고 하면 느낌이 안 산단 말이지.

물론 의사소통의 원활함을 위해 기준을 정해야 한다. 그것은 언어의 사회적인 중요한 가치이자 존재 이유다. 하지만 그 기준은 우리의 삶에 투영되어 변하게 된다. 가끔 책을 읽다 나오는 익숙지 않은 말을 보면 물 흐르듯이 흘러가던 낭독에 강한 브레이크가 걸린다. 남들은 이 말을 보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지고 댓글을 남기고 싶어진다. 누가 내 댓글에 대댓글 좀 달아줘! 이 또한 인터넷이 발달한 세상에 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생각일 거다.

하지만 표현 수단이 다를 뿐이지 조선 시대 저잣거리에 방을 붙이면 그 밑에 댓글을 달았을지도 모른다. 대학교에서 흔했던 대자보 밑에도 반발 글이 달리는 것처럼. 예전에는 오히려 댓글보다는 리플이라는 말이 훨씬 많이 쓰였다. 인터넷의 발달로 무분별한 외래어를 우리말로 바꾸고자 하는 노력이 성공한 예 중 하나이다. 반면에 누리꾼이라는 말은 네티즌보다 순화 노력에 실패한 것 같다. 실생활에서 쓰기 보다는 인터넷 기사에서만 마주하게 되었다. 이처럼 사람들이 다 같이 써야 언어는 그 역할을 온전히 하게 된다. 사실 외래어를 많이 쓰지 않는 것보다 얼마나 많이 그 단어를 쓰고 소통이 가능한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거칠다는 강해 보이고 더럽다는 안 좋아 보이고 귀엽고 사랑스럽고 예쁜 건 정말 예뻐 보인다. 말하기에 따라 상대방에게 어떤 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지 정해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나에게 귀엽다는 단어는 상대방에게 표현할 수 있는 극상의 칭찬이다. 나는 정말 귀엽고 아기자기하고 올망졸망한 것들을 좋아한다. 내가 귀여운 것을 보고 귀엽다고 말할 때 내 표정도 정말 행복해 보인다.

그런데 여성에게 귀엽다는 말은 예쁘다는 말을 하긴 그렇고 못생겼다는 말을 하는 것은 실례이므로 못생겼음을 에둘러 표현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텔레비전에서 들은 적이 있다. 남성에게 귀엽다는 말도 남자답고 멋진 것이 이상인 남자들에게 좋은 표현은 아니며 받아들이는 사람도 기분 나빠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 가깝지 않은 사람에게 쓰는 것은 자제하게 되었다.

이처럼 추상적이며 여러가지 의미로 해석될수 있는 단어도 있는 것을 보면 언어의 세계는 신비롭다. 그리고 이 말은 억양이 수반되었을 때 더 강력한 효과와 가치를 발한다. 이거 귀여워. 랑 이거 귀여워~~~~랑은 다르니까. 이렇게 보니 느낌표, 물음표도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된다. 언어는 내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이지만 상대방이 받아들이는 관점과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한번에 일치시키긴 어렵다. 그래서 우린 끊임없이 얘기하고 소통하면서 살아가는 것인가 보다. 그 사람의 다정함은 오늘도 나에게 귀여움으로 표현될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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