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라와 태양

클라라와 태양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홍한별 옮김 / 민음사 / 2021년 3월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릴적 시험을 앞둔 즈음이면, 마음 가짐을 더 착하게 먹으려고 애쓰곤 했다. 괜히 섣불리 갖게된 나쁜 마음, 나쁜 행동 하나에 액운 같은게 섞여서 아는 것도 생각나지 않을까봐 겁이나고 초조했던 마음에서였다. 그런데, 여기 그런 마음을 가진 로봇이 있다. 다양한 기능으로 10대 아이들을 교육할 수 있을만큼, 또 세심한 관찰력으로 몸이 불편한 아이를 도울 수 있을 만큼 똑똑한 기능을 가진 로봇이지만 인과관계를 알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어떠한 믿음을 굳건히 가진 로봇. 

 클라라는 태양을 에너지원으로 삼는 인공지능 로봇이다. 그래서 창가에 앉아있는 걸 좋아하고, 창가에 앉아 주위를 관찰하기를 좋아하는 세심한 로봇이다. 여기까지, 어딘가 뚝뚝 끊기는 듯한 로봇의 관점으로 시작하는 이 책을 열면서, 다른 SF 소설과 비슷하구나 여겼다. 그런데, 클라라의 주인이되는 조시를 만나고부터 이 이야기는 새로워진다. 

조시는 어릴적부터 어딘가 몸이 불편했다. 그런데 병세가 심해지면서 클라라를 조시의 집으로 오게한 목적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세심한 관찰력으로 늘 조시 옆에서 조시를 보살피면서 조시처럼 행동하는 클라라를, 어쩌면 조시로 대체할 수도 있다는 것. 책 속에는 클라라를 완벽히 조시로 대체할 수 있다는 사람과, 대체해서는 안된다는 사람과. 대체할 수 없다고 믿지만 가능성을 믿는 사람이 나오는데, 결국 이 세 사람의 입장을 모두 이해하고 결단을 내리는 쪽은 그 셋 중 어느 누구도 아닌 로봇 클라라이다.

클라라는 자신에게 힘을 주는 태양이 자신의 소중한 주인이자 친구인 조시에게도 선한 영향력을 줄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태양에게 조시의 병세를 회복시킬 힘을 달라고 애원한다. 혹여나 기도의 힘이 약해질까봐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만큼 클라라의 마음은 간절해서 태양이 쉬러간다고 믿는 곳으로 태양을 만나러 간다. 태양의 힘을 믿는 로봇이라니, 클라라가 태양이 쉬러가는 곳을 향해 조시의 오랜 친구인 릭의 등에 업혀 나아갈 때는 기분이 정말 묘했다. 게다가, 간절한 마음에 찾아왔지만 태양이 쉬러 온 곳에 불쑥 찾아와 기도를 내뱉는 자신의 행위가 오히려 태양의 심기를 건드릴까봐 걱정하는 모습은 인간적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뜻대로 에너지를 듬뿍 주지 않는 태양을 원망할 법도 한데, 클라라는 오히려 기도를 빌기만 했던 자신을 반성하면서, 자신의 소중한 무언가를 내어주고 소원을 이루려한다. 너의 소중한 것을 내어 놓아야만 기도를 이루어준다는 구원의 약속을 받아낸 것도 아닌데, 조시와 친구가 되어주기로 했으니까, 조시의 엄마를 위로하고 싶으니까, 조시를 대체할 수 없다고 선택했기 때문에 클라라는 기꺼이 자신을 희생한다.

간절한 기도가 이루어진 건지, 정말로 태양이 힘을 내어 준건지, 우연의 일치인지 알 수 없지만 클라라가 자신을 희생한 뒤에 커텐이 걷히고 거짓말처럼 내리쬐는 햇빛과 함께 조시는 건강을 회복한다. 건강해진 조시와 가족들 사이에서, 클라라는 자연스럽게 멀어진다. 충분히 서운한 감정이 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클라라는 그마저도 이해한다. 조시와 릭이 어느덧 성장해 각자의 길을 가지만, 평생의 우정을 약속했던 당시의 모습이 진실이었듯이, 시간이 지나 맞이하게 되는 자연스러운 이별이 있음을 클라라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세상에는 수많은 SF 장르가 존재하지만, 이토록 로봇인 주인공에게 이입이 되는 작품은 드물었다. 아마도, 어디까지나 분리된 존재로서 판단하거나 관찰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하고 있는 자신의 말을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는 로봇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조시의 가족과 헤어져 야적장에서 자신의 기억들을 반추하는 클라라의 모습이 쓸쓸하지만 한편으로 자연스러운 것은 인간은 잠재적으로 외로운 존재(p.379)라는 걸 이미 알고 있는 로봇이 스스로의 외로움을 받아들이는 과정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이 글 속에 나오는 모든 등장인물 중 가장 인간 다운 존재는 아이러니하게도 로봇인 클라라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