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에 스페인
최지수 지음 / 참좋은날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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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의 햇살을 닮은 친구에게 어울리는 책을 만나서 생일 선물로 고른 책이었다. 책이 너무 예뻐서 나도 한 권 샀다.

틈이 나면 여행을 떠나곤 했던 친구에게 이렇게 긴 여행 암흑기가 올 줄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날들이 무던히 흐르고 있다.

2020년도 1월 달에 급하게 일정을 짜서 겨울의 유럽을 보러갔다. 짧은 일정에 가고 싶은 곳들을 새겨 넣으면서 해마다 한 번씩은 가고 싶은 곳을 다녀와야지, 다짐했었다. 1월 말에 일이 몰려서 괜히 갔다고 동행이었던 동생에게 투정을 부리며 출발했는데, 그게 한동안 마지막 여행이 될 줄은 도착할 때조차 미처 알지 못했다. 짐을 끌고 어기적거리며 나오던 그 때 혹시 우한에서 왔다면 저쪽으로 가라고 삼엄하게 말하던 안내자의 목소리가 서늘하게 들렸다.

2015년도에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았던 모든 돈을 털어서 첫 유럽을 다녀왔다. 7월의 뜨거운 햇살 만큼 마냥 들 떠 있다가 런던과 파리를 거쳐 세번째 도시였던 바르셀로나에서 지갑을 도둑 맞았다. 하필이면 도시를 이동한다고 큰 단위의 지폐를 가방에서 지갑으로 옮겨 놓았던 날이었다. 여행의 시간은 삼분의 이 가량 남아있었지만 너무 속이 상해서 몬세라트의 장엄함도, 가우디의 성당도, 바르셀로나의 모든 것들이 마음을 비껴가고 있었다. 친구들은 가장 기억에 남는 나라로 스페인을 꼽곤 했는데 내게는 아프고 멍한 기억이 얼룩진 공간이 되어버렸다.

이 책을 만나서 그 때 그 시간에 무채색으로 남아있던 바르셀로나의 모습들에 색깔이 입혀졌다. 여행을 준비할 때의 설레는 마음과 공항에 내렸을 때의 초조한 마음들, 열심히 계획을 세워두고는 여행자만의 느긋한 여유를 누려보는 순간들, 자존심이 상하면서도 한식 한 입에 해복을 느끼는 순간들까지.

유명한 핫 스팟들의 일러스트레이션을 보는 재미도 있었지만 그 공간을 지켜보는 사람들, 우연히 지나가던 사람들의 깨알같은 순간들까지 책 속에 담겨있어서 우울했던 스페인에 대한 기억이 조금은 예뻐졌다. 다시 가보고 싶은 마음이 처음으로 생길 만큼.

 

언제 다시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갈 수 있을지 모르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시간들도 언젠가는 지나갈 것이고, 지금 덧 입혀진 색깔들이 선명해지는 여행을 하러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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