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라는 세계

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지음 / 사계절 / 2020년 11월

이 책의 추천사를 쓰기도 한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이라는 영화를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분명 초등학생 여자친구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지금의 나와, 내 주변의 우리들과 별반 다르지 않아서.

이 책을 통해 글쓴이가 운영하는 글쓰기 모임에 다니는 다양한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조그만 것에 우쭐하는 어린이, 작은 것도 나누고 싶어하는 어린이, 사소한 것에도 성취감을 느끼는 어린이, 늘 보던 일상에서도 새로운 앎을 깨닫게 해주는 어린이까지.

이 어린이들의 시선에는 내가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할 때 느낄 수 있는 설렘 같은 감정이 녹아있었다. 그 마음들은 어딘가 사라져버린 게 아니라 저 밑에서 나를 이루고 있는 것들이었는데 어느샌가 잃어버리고 있었다니 설 연휴에 이 글을 읽으며 앞으로 무얼할까가 아니라 지금껏 나를 이루고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어서 신선했다.

노 키즈 존을 넘어, 노 배드 페어런츠 존에 대한 작가의 비판이 실린 이야기가 나왔을 땐 마음이 찔렸다. 며칠전 출장길 KTX에서 어린애들의 소리가 귓가를 찌를때 나도 모르게 구겼던 미간이, 부모를 향했던 시선이 생각나서였다. 어떤 인종의 출입을 금한다는 표지판에는 금방이라도 분노를 쏟아낼 수 있었으면서 특정 나이대의 누군가의 출입을 금한다는 표지에는 어느 정도 수긍하고 동조를 표하기도 했던 내 마음의 차별성에 대해서도 돌아봤다.

우리는 누구나 어린이였고, 자랐고, 그리고 나이들고 있다. 인생의 길이를 살펴볼 때 자라고 성장하는 시간보다 어느새 멈추어 노화하는 시간이 훨씬 더 긴것 같다. 각각의 순간에 가졌던 마음들을 기억할 수 있다면 불쑥 찾아오는 나이듦에 대한 서글픔을 방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다보면 나이든 이들, 나와 함께 나이들고 있는 이들, 그리고 자라는 이들에 대한 이해도 넓어질 수 있지 않을까.

차별과 혐오로 점철된 지금에 나와 타인에 대한 온기를 불어넣어 주는 책이었다. 친절한 아이들이 친절한 어른이 될 수 있도록, 내가 조금 더 상냥한 어른이 될 수 있도록, 누군가 서 있기에 세상이 조금 더 편안해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