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 담배 말들의 흐름 1
정은 지음 / 시간의흐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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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는 쉽게 손을 내밀어준다.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내가 발을 반쯤 걸치고 삶의 여유를 꿈꿔 볼 수 있게 한다. 커피마저 없다면 내 삶은 무미건조하고 비참해질 것이다. 커피는 아무것도 아니므로 거기에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다.'(p.18)


이 책은 '커피와 담배'라는 특정한 기호품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좋아하는 무언가를 오롯하게 바라보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다. 커피와 담배와 얽힌 짤막한 12개의 단편 속에는 작가의 소소하지만 내밀한 일화들이 담겨있는데, '커피와 담배'라는 주어의 자리를 내가 좋아하는, 추구하는 그 무언가로 치환하면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 책이다. 커피 맛을 잘 모르고 담배를 전혀 피울 줄 모르는 나에게도 이 책의 문장들이 소중했던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었다.


작가의 기억 속에 담긴, 할아버지로 부터 이어지는 담배의 첫인상을 살펴보는 것도 재밌고, 담배를 피우는 리듬감이 마음에 들어 그에게 한 마디라도 더 붙여 보려고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작가의 모습이 귀여웠다. 한 시간의 아르바이트비와 맞먹는데도 한 잔의 커피를 들이켜야할 만큼 커피 애호가이지만, 누구에게도 자신의 취향을 권하지 않는다. 취향으로서 드러나는 자신의 모습을 들키는게 부끄럽기도 하고 누군가가 자신만의 커피를 즐기게 되는 그 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누구에게나 나만 알고 싶은 인생의 소중한 순간이라던가, 나만 즐기고 싶은 요즘의 취미같은 것이 있을 것이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나만의 것으로 온전히 간직하고 싶다가도 너무 좋아서 순간 나도 모르게 터져나와 말하게 되거나 극히 찰나의 순간만 콕 집어 SNS에 공유하게 된다. 그런 인생의 순간을 뚝 떼어내어 글로 써 준 작가가 고맙고 작가가 커피와 담배를 바라보는 방식으로 나도 내 삶의 한 부분을 바라볼 수 있게 되어서 즐거웠다.


the real group의 coffee calls for a cigarette이라는 노래를 좋아한다. 가사 속 주인공은 한 잔의 커피에, 커피가 부르는 담배에, 담배가 부르는 마실 것과 그에 따라오는 노래와 춤으로 지나가는 시간의 무상함을 견딘다.  이 사람은 부엌에서 따른 한 잔의 커피와 가득 차 있는 한 갑의 담배로 충만하지만 이런 그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이 온다면 이것들을 다 포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작가와 노래 속 주인공이 닮은 것 같아 이 책을 읽는 동안 이 노래를 줄곧 들었다.

 

작가는 커피와 담배가 고립을 고독으로 만들어준다고 말했다.(p.96) 여기서 말하는 '고립'이란 누구와 함께 있어도 내게 결핍되어 있는 것이 나 자신인 상태이고, '고독'은 내가 나 자신을 벗 삼고 있는 상태이다. coffee calls for a cigarette 속 주인공은 무상한 지나간 날들을 잊기 위해 커피와 담배를 찾는다. 커피를 마시는 시간, 담배가 타 들어가는 순간을 '나'는 오롯이 바라보며 나 자신을 바라보고 이러한 고독의 시간이 있었기에, 그토록 좋아하는 커피와 담배의 자리를 '당신'에게 내어줄 수 있을만큼 넓어진 게 아닐까.


담배를 전혀 피울 줄 모르지만 커피와 담배는 어딘가 닮아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회사원들에게 그렇다. 바쁜 일과 중에 잠깐 커피를 기다리는 시간, 커피 한 잔의 시간, 담배 한 개비의 시간만큼은 일에서 잠깐 떨어져 온전히 내가 되기도 하고 그래서 옆 자리 동료를 바라볼 수도 있고, 다음 일을 시작하기 전에 마음을 다스릴 수 있기도 하다. 커피와 담배는 누군가에게 기호이자 취미이고, 나를 바라보는 도구이자 소통의 창구이며 이외에 그 어떤 것도 될 수 있으면서도, 반대로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꼭 어떤 의미를 지니지 않아도 나는 그냥 이 글이, 이 글을 읽는 시간이 좋았다.


지금 밖에는 비가 오는데, 따뜻하고 진한 커피를 마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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