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도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4
서머싯 몸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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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싯 몸의 소설 첫문장은 늘 주위를 집중시키고 책 속으로 끌어당긴다.

"지금껏 이렇게 염려스러운 마음으로 소설을 시작해 본 적이 없다."로 시작하는 이 책은 "달과 6펜스처럼" 작가가 실제 인물을 회상하며 쓴 것이다.

 

"나"가 회상하는 사람들은 엘리엇부터 시작한다. 최고 가문의 상류층의 사교모임에 속하고자 끈질기게 노력한 끝에 상류층 파티의 노련한 중심인물이 된 그는 계급과 가문의 특권의식에 항상 자부심을 갖고 산다. 옷도 항상 런던 의상실에서 맞춰 입고 거의 매일을 사교계 모임 초대장을 고르는데 바쁘다.

 

면도날이란 제목과 가장 잘 어울리는 인물은 십대때 전쟁에서 조종사로 참여하고 돌아온 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래리다. 그는 조종사 친구의 죽음을 목격한 뒤로 삶의 의미와 신의 존재에 대한 실존적인 답을 찾기 위해 대학생활과 든든한 미래를 약속하는 직장도 마다하고 파리로 떠난다. 종교와 신비주의, 철학에 대한 엄청난 책을 읽고, 갑자기 광부로 일을하거나 무작정 어딘가로 떠나 떠놀이 인부로 농장에 취직하는 등 정신세계의 자유를 갈망한다.

 

가장 반대되는 인물이 엘리엇과 래리다. 우아하고 교양있는 생활과 사교파티가 곧 자신이며 숨구멍인 엘리엇의 세속적인 삶과 그런 화려한 것들은 아무의미 없이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자아완성을 추구하는 래리의 정신적인 삶.

엘리엇의 삶은 누구나 추구하고 바라는 것인 반면 래리의 삶은 마음 속 깊이 바라지만 감히 따라하기에 용기가 없다.

 

엘리엇은 60을 넘기고 늙게 되자 초대장의 숫자도 뜸해진다. 병을 얻어 침대에 누워 죽음을 앞두고 있을때도 파티에 초대되지 않은 것에 눈물을 흘리는 그의 모습에 연민을 느꼈다. 결국 쓸쓸히 세상을 떠난다.

작가는 엘리엇을 세속적이긴 하지만 그를 비판하지 않는다. 그가 파산한 조카부부를 거둬들이고 책임을 다하는 모습, 죽음을 앞두고도 불꽃놀이 파티에 초대되지 못해 우는 모습들이 어떤 면에선 솔직하고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게 한다.

 

이 밖에도 사랑 대신 안락한 삶을 택한 엘리엇의 조카 이사벨, 험난한 인생 자기 방식대로 굳세게 살아온 수잔, 아픔을 극복못하고 자살한 소피 등 저마다의 인생을 어떻게 대처하고 살아가는지 다양한 인물들이 생생하게 살아있다.

 

래리는 인도에서 현자와의 만남을 갖고 미국으로 다시 돌아와 "나"에게 정신세계를 추구하는 삶을 퍼뜨리며 살겠다는 계획을 말한다.

 

책은 이런 삶이 옳고, 그르다는 판단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날카로운 면도날의 경계선을 넘으려 하는 래리의 이상과 용기를 응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래리에게 유산이 없었다면 그렇게 자유로운 여행을 하며 살수 있었을까. 그도 나중에 그 돈 덕분에 자유로웠다고 말한다. 정신과 세속의 삶이 적당이 균형을 이루며 사는게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책은 시대의 변화를 보는 재미가 있다. 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래리, 1929년 공황으로 파산한 이사벨 부부, 사교계 파티에 가문이 아닌 배우나 사업가가 초대된 것에 대해 이해 못하는 엘리엇.

작가인 극중 "나"가 사랑에 대해 이사벨에게 충고하는 말 "성적인 열정이 사랑이며 그것이 소멸되고 난 후에 관계에서의 애정이나 취향, 습관을 사랑이라 착각하는 것 뿐이라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저마다의 각기다른 인생을 보여주는 서머싯 몸 판의 인생드라마다. 시대는 바뀌지만 겉이 약간 달라졌을 뿐 하는 얘기는 결국 똑같은, 그래서 시대는 달라도 더 공감되고 위안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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