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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저
나카 칸스케 지음, 양윤옥 옮김 / 작은씨앗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요즘 같이 빠르고 바쁜 시대에 내 안의 고요히 쉴만한 작은 세계로 이끄는 책이다.
작가의 어린시절을 시처럼 아름다운 문장으로 엮어서 정리한 책으로 어느 날 오래된 서랍장에서 어릴때 자신이 갖고 놀던 장남감이 들어있는 상자를 발견하고 추억의 문을 조심스레 열어 그 안으로 들어간다.
유달리 몸이 약하고 예민했던 아이는 이모의 등에 업혀 그 너머로 세상을 바라본다. 이모와 가족의 특별한 애정 속에서 응석받이처럼 자라지만 누구보다도 뛰어난 감수성과 때묻지 않은 순수함이 밴 소년으로 자라는데 귀중한 시간이었다.
날마다 들려주는 이모의 이야기, 아름다운 자연풍경, 일본 하이쿠 시조와 학, 소나무 등의 풍경그림 등으로 유년시절의 예술적 소양을 길러갔다. 읽는 나도 예술의 소양이 쌓이는것 같다.
어린 소년의 눈으로 본 1910년 대의 모습, 각종 전통 풍습들, 불당 등이 섬세하게 묘사되었다.
아이가 느낄 법한 동심과 감정들이 놀라울 정도로 세세하게 어른의 말로 쓰여있어서 읽는 내내 내 어린시절의 그리움들이 올라왔다.
소설의 아이처럼 어렸을때 내가 세상을 바라보고 느꼈던 감정들이 어땠는지 떠오른다.
창 밖이 빠르게 지나가는 버스 안이 아닌 고요한 숲 한 가운데 와 있듯 느끼게 하는 소설의 문장들이 풍부하고 아름다워서 간혹 한 문장씩 다시 되네이게 하게는 힘을 가졌다.
책이 두 가지 힘을 가졌다고 하면 그건 이야기와 문장이 뿜어내는 정서적 안정감과 감수성 일거라고 생각한다.
빠르고 지친 일상에 작은 쉴 시간 조차 스마트폰에 매달리는만큼 불안하고 감성이 메마르는 요즘이다.
잠시 침묵하고 고요한 내면 가운데 내 자신을 들여다보고 정성스럽게 손질한 한 문장을 통해 감수성을 충전하기에 딱 알맞는 책이다.
이 책 한권을 3년 동안이나 수업한 국어교사의 학생들이 대다수가 명문대에 들어가고 현재 각계의 리더로 성공했다고 한다. 교사의 수업방식처럼 나도 한 문장씩 공들여 읽었다.
이 책이 수업의 슬로리딩의 책으로 선택되어 많은 학생들의 인생에 꽃을 피우는 데에는 분명 특별한 힘이 있을거다.
정서적 편안함과 감성 외에도 한 아이가 자라나는 성장통, 자연과 곤충과 함께하며 키워지는 심성이 사춘기 학생의 마음에 좋은 공감대를 불러일으켰을거라 생각한다. 물론 문장력도 뇌에 한 몫했을거다.
100년이나 흘렀지만 여전히 일본인에게 사랑받는 고전으로 오히려 신선함까지 전해진다고 한다.
삭막한 현실에서 벗어나 안정을 찾고 싶을 때, 시간에 낡지 않는 은수저가 든 이 상자를 열어보는게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