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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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님의 산문집을 읽으면서 아, 산문이 이렇게 따뜻하고 아름다운 거구나 를 알게 되었다. 요즘 대나무 숲 힐링 등 여행, 먹거리에 힐링을 붙인 상품이 잘 팔릴정도로 대세인데 이 글을 보면서 마찬가지로 내 마음이 힐링이 되는 걸 느꼈다.

교외의 고요한 숲과 냇가에 휴가를 온 느낌이었으니 당연히 힐링이 되지 않았을까

작가의 소박한 시골 전원 생활과 마당의 살구나무를 보며 자꾸 떠오르는 그리운 고향 개성집, 유년 시절. 그리고 절대 잊을 수 없는 상처이지만 작가가 되는데 결정적이었던 6.25전쟁.

 

명성있는 작가이지만 겸손하고 소박한 삶을 꾸려가는 박완서님의 일상과 사유를 읽으면서 참 곧고 선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서가에 꽂혀 있으려는게 아닌 읽히려고 만든 책이니만큼 마음껏 빌려주고 굳이 받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여건 상 베어서 밑둥밖에 남지 않는 목련나무를 보며 항상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자연을 아끼는 마음이 넘친다. 밝고 평온해만 보이는 그녀의 마음엔 어둡고 아픈 상처가 남아있다. 전쟁이 남긴 상처와 아들을 잃은 슬픔.

 

도도한 서울대 여학생으로 입학한 그 해 6.25가 터져 한 순간에 가장이 되었던, 유난했던 추위, 피난생활의 고단함, 비참함, 서로를 고발하는 삭막함이 그녀가 주부가 되어서 분노와 잊지 못할 아픔으로 되살아났다. 그 분노로 하여금 그녀가 글을 쓰도록 했고, 작가가 되었다. 노년이 되어서도 그 기억이 마치 썩지 않는 방부제 음식처럼 생생하게 살아난다고 하니, 전쟁을 직접 겪지 않아 실감할순 없지만 절대 일어나선 안되는 잔인한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사유가 기분좋았던 "구형예찬"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모두가 한 마음이던 2002월드컵을 시청하며 선수들이 찰때 생명력을 갖는 축구공을 발견하고 혹시 지구도 신이 찬 공이 아닐까 하는 재밌는 생각. 아무 데나 자기가 선 자리가 중심이 되는 구형은 모두가 평등하다. 그게 창조의 뜻이고 구형의 미덕이다. 평면으로 지구를 그려넣어 중심과 변방이 생긴 평면 지도 보다 둥근 지구의가 한결 사랑스럽다는 사유를 보며 틀에 밖힌 생각을 넘어 본질에 가까워 지는 느낌을 받았다.

뒷편에 박수근 화백과의 인연, 박경리 작가와의 추억 등 생전 인연이 닿았던 존경한 작고인에 대한 그리움을 적은 글이 실려있다.

마냥 친절할것만 같은 그녀와 달리 쌀쌀맞고 남을 구박했던 전쟁시절의 PX걸로 취직했을 때 이야기도 재밌고 놀랐다.

 

살구나무가 아름답게 핀 고향 마당에 대한 그리움과 더불어 만약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하는 아쉬움이 항상 가슴 한 켠에 살아 움직이지만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고 실제의 고향 모습은 환상과 다를 것이라 위로하는 작가의 모습은 다시한번 전쟁의 상식을 벗어남과 어이없음과 잔인함을 느끼게 한다.

작가의 삶과 사유가 담담히 녹아있는 산문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특유의 감성, 사소한 것을 깨달음으로 발전시켜나가는 시적 연상이 깊이 묻어나는 산문집을 앞으로 자주 읽어야 겠다.

박완서 님의 이 산문집이 다시 읽고 싶어지는 건 소박하지만 깊고, 평온하지만 아픔을 이해하고 감싸안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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