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진 시절 소설Q
금희 지음 / 창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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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런 느낌의 책 정말 좋다. 책의 마지막장을 덮고 난 후 여운이 꽤 오래 간다.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지만 사회와 현실을 깨달으며 점점 무너지고 무뎌지는 20대, 그리고 힘든 상황에서도 서로를 지탱할 수 있게 해주는 사랑. 고향을 떠나 천진에서의 열정과 혼란으로 뒤덮인 상아의 20대를 단숨에 읽었다. 그리고 나의 20대를 바라보았다.

주인공 상아는 연인인 무군과 함께 고향을 떠나 천진에 자리잡은 조선족 여성이다. 일자리를 찾아 대도시로 한 명 두 명 떠나며 고향 마을엔 젊은이가 너댓 명 밖에 남지 않았다. 상아와 무군은 그 너댓 명에 속한 젊은이들이었다. 무군이 천진시에서 일하는 누나로부터 일하러 오라는 연락을 받고 상아와 함께 고향을 떠났다.

여기서 천진시는 상해에서 약간 떨어진, 한국의 OEM 생산을 위한 공장들이 밀집하기 시작한 중소도시였다. 중국어와 한국어가 모두 가능한 조선족들은 한국인 기업인들에게는 최적의 파트너였고, 그렇게 조선족을 끌어모아 공장들을 가동했다.

무군과 상아도 한국인이 차린 인테리어 자제 공장에 취직했고, 공장기숙사에 살림집을 차리고 살았다. 고향에서 16시간이나 기차를 타고 와 낯설고 두려운 도시에서 경제활동을 시작한 상아는 사랑하는 무군이 곁에 있기에 잘 견딜 수 있었다. 그리고 같은 고향 출신의 비슷한 처지인 정숙과 그의 연인 희철과도 금방 친해져 네 사람이 함께 어울리며 잘 지냈다.

적은 월급이지만 묵묵히 일하는 연인과 함께 언젠가 결혼도 하고, 아파트에 들어가 자식도 낳고 남들처럼 행복해 보이는 삶은 살 거라는 기대는 금방 깨졌다. 사장이 타고 다니는 자동차는 월급을 10년이나 모아야 겨우 살 수 있었고, 석양을 뒤로하고 황금빛으로 빛나는 화려한 아파트는 평생 살아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다. 어렴풋이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을 때 고향친구 춘란을 만난다.

화려한 복장의 춘란은 중학교를 다 마치지 않고 고향을 떠났다. 그간의 삶을 설명하며 지금은 돈 많은 남성과의 관계를 통해 원하는 것을 얻고 있다고 솔직히 말한다.

춘란의 방문은 나와 정숙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우리 둘 다 자신들이 겸연쩍거나 수치스럽게 생각했던 사람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무군의 손길이 반갑지 않았고 몸도 쉬이 열리지 않았다. 나는 삶의 어떤 변화, 질적으로 더 나은 변화를 원하고 있었다. 내 욕망이 정당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욕망은 꿈이 아니었지만 최소하느 그때는 두가지가 결국 같은 것이라고 각했다. 그걸 위해서 사는 삶이라면 오히려 춘란이나 미스 신이 나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소한 그녀들은 욕망 앞에서 정직하고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는가.

하루종일 열심히 일하지만, 자신들의 월급으론 ‘적당히’ ‘구색맞게’ 산다는 것이 힘든 현실을 알아간 상아와 정숙. 그녀들의 눈에는 큰 욕심 없이 회사에서 주는 월급을 받으며 묵묵히 일하는 연인들이 답답해지기 시작한다. 더구나 고향에 남겨진 가난한 가족들에게는 자꾸만 돈이 필요해진다.

-나쁘고 좋고가 어딨니? 그게 다 운이고 능력이지. 난 이제 알았어. 지금은 그저 돈 없는 사람이 나쁜 사람이란 걸. 선한 마음만 있으면 뭐 해? 그거 가지고는 아무도 도울 수 없는데.

급기야 정숙은 ‘가난이 나쁘다’는 결론을 내리고 희철에게 이별을 고한다. 상아 역시 무군에게 이별을 고하고 회사를 옮긴다. 다급하게 찾아온 무군을 모질게 내쫓고 미스신이나 춘란처럼 남자에게 도움받는 삶에 조금 가까워질 뻔 하기도 했다. 하지만 상아는 다시 고향으로 향하고, 그 이후로 정숙을 한번도 만나지 못했다.

이야기의 시작은 정숙을 만나기로 약속을 하면서 천진에서의 생활을 회상해 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가장 순수했지만 세상에 눈을 뜨면서 욕망으로 순수가 깨져가는 그 격랑과 혼돈의 시기의 이야기다.

영화 첨밀밀의 분위기도 조금씩 풍겨나는데, 차이점은 첨밀밀의 두 사람은 노력하면 적당히 살 수 있지만 천진에서 사는 젊은이들은 노력해도 영원히 밑바닥 가난과 노동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금색의 햇빛을 가닥가닥 사방으로 반사하는 그건물 아래를 지나다보면 기하급수적으로 커져가는 그 도시의 풍요로움이 내 앞에도 한몫 차려질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물론 그것은 착각이었다.

내가 사는 도시는 커져가는데 내 삶은 그대로다. 곳곳에서 공사를 해대더니, 어느순간 아파트들이 쑥쑥 올라가는데 그 어느 곳에도 내가 살 곳은 없다. 그 도시에 속해 나 역시 그 도시의 이미지처럼 살 것 같지만 현실은 언제나 아둥바둥이다.

욕망이 자라 사랑을 버렸던 그녀들은 그래서 다른 선택을 하고, 또다른 삶을 살고 있을까. 결말은 책에서 확인하길 바란다.

*이 글은 출판사의 이벤트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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