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느낌의 책 정말 좋다. 책의 마지막장을 덮고 난 후 여운이 꽤 오래 간다.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지만 사회와 현실을 깨달으며 점점 무너지고 무뎌지는 20대, 그리고 힘든 상황에서도 서로를 지탱할 수 있게 해주는 사랑. 고향을 떠나 천진에서의 열정과 혼란으로 뒤덮인 상아의 20대를 단숨에 읽었다. 그리고 나의 20대를 바라보았다.
주인공 상아는 연인인 무군과 함께 고향을 떠나 천진에 자리잡은 조선족 여성이다. 일자리를 찾아 대도시로 한 명 두 명 떠나며 고향 마을엔 젊은이가 너댓 명 밖에 남지 않았다. 상아와 무군은 그 너댓 명에 속한 젊은이들이었다. 무군이 천진시에서 일하는 누나로부터 일하러 오라는 연락을 받고 상아와 함께 고향을 떠났다.
여기서 천진시는 상해에서 약간 떨어진, 한국의 OEM 생산을 위한 공장들이 밀집하기 시작한 중소도시였다. 중국어와 한국어가 모두 가능한 조선족들은 한국인 기업인들에게는 최적의 파트너였고, 그렇게 조선족을 끌어모아 공장들을 가동했다.
무군과 상아도 한국인이 차린 인테리어 자제 공장에 취직했고, 공장기숙사에 살림집을 차리고 살았다. 고향에서 16시간이나 기차를 타고 와 낯설고 두려운 도시에서 경제활동을 시작한 상아는 사랑하는 무군이 곁에 있기에 잘 견딜 수 있었다. 그리고 같은 고향 출신의 비슷한 처지인 정숙과 그의 연인 희철과도 금방 친해져 네 사람이 함께 어울리며 잘 지냈다.
적은 월급이지만 묵묵히 일하는 연인과 함께 언젠가 결혼도 하고, 아파트에 들어가 자식도 낳고 남들처럼 행복해 보이는 삶은 살 거라는 기대는 금방 깨졌다. 사장이 타고 다니는 자동차는 월급을 10년이나 모아야 겨우 살 수 있었고, 석양을 뒤로하고 황금빛으로 빛나는 화려한 아파트는 평생 살아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다. 어렴풋이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을 때 고향친구 춘란을 만난다.
화려한 복장의 춘란은 중학교를 다 마치지 않고 고향을 떠났다. 그간의 삶을 설명하며 지금은 돈 많은 남성과의 관계를 통해 원하는 것을 얻고 있다고 솔직히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