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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페퍼 - 아내의 시간을 걷는 남자
패드라 패트릭 지음, 이진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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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죽은 뒤 자신을 가둬버린 남자, 69세 홀아비, 아서 페퍼. 아내 미리엄이 죽고 1년째 되는 날, 그는 아내의 유품 정리를 시작한다. 미리엄이 전화기 밑에 보관해둔 고양이 구조대 관련 광고지를, 그곳으로 유품을 보내라는 아내의 신호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갈색 스웨이드 부츠 안에서 하트 모양의 상자를 발견한다. 열쇠 수리공 50년의 경력을 살려 자물쇠를 열고서 발견한 것은 참(cham) 팔찌였다. 코끼리, 꽃, 책, 팔레트, 호랑이, 골무, 하트, 그리고 반지. 모두 여덟 개의 참이 달려있었다. 자신이 모르는 아내의 물품에 아서 페퍼는 당황한다. 그리고 홀린듯 코끼리 참에 적힌 연락처로 전화를 걸어, 아내가 인도에서 살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역시 자신이 몰랐던 아내의 이야기에 아서 페퍼는 당황한다. 그렇게 홀린 듯 아서 페퍼는 아내가 걸어온 삶의 흔적을 찾아, 자신의 마을을 떠나 런던, 파리, 그리고 인도에 발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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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페퍼는 자신이 알던 아내의 모습이 아닌, 아내의 삶에 혼란스러워 하면서도 아내의 삶의 흔적을 되짚어본다. 슬픔에 빠져있던 홀아비는 어느 순간 의심과 질투심으로 가득한 한 남자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아내의 지난 삶을 찾는 과정에서 아서 페퍼가 찾은 건 자신의 삶이다. 호랑이에게 깔려 죽을 뻔한 상황에서 의연하게 대처하기도 하고, 나체가 되어 누드 모델이 되기도 하며 자신이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찾는다. 딸에게 다시 다가가 거리를 좁히기도 한다. 참에 담긴 사연들을 모두 찾아낸 뒤, 아서 페퍼는 아내의 과거에 대한 집착아닌 집착에서 한걸음 물러난다. 자신과 함께 사는 동안 아내는 행복했고, 무엇보다 본인도 행복했다. 자신이 아내를 가둔 것이 아닌가 생각했지만, 결국은 아내가 생각한 삶이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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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장을 넘기고 몰입해 읽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장에 이르렀다. 400쪽이 넘는 책을 한 자리에서 다 읽는 건 흔치 않은 일인데,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고 오히려 만족스러웠다. 무턱대고 모험을 떠난 69세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느새 그를 응원하게 된다. 아내가 떠나고 홀로 남은 집에 누가 찾아오는 것에 놀라 벽에 붙어 동상인 척 하던 아서 페퍼가 남의 집 문을 따고 들어가 친구의 소중한 물건을 되찾아 오는 장면에서는 감탄을 담은 웃음이 나온다. 소소한 듯 대범하게 풀려나가는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여러 국가를 넘나드는 아서 페퍼의 여정을 함께 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와 더불어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존재를 다시 찬찬히 생각하게 된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마음 한 구석에 온기가 피어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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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페퍼>는 메이저 영화사에 판권이 팔렸다고 한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어떤 모습으로 스크린에 비춰질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특히 매주 일요일 오후 <미스 마플>과 <명탐정 포와로>를 챙겨봤다는 아서 페퍼와 미리엄 페퍼 부부의 모습이 기대된다. '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