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백제 - 백제의 옛 절터에서 잃어버린 고대 왕국의 숨결을 느끼다
이병호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내가 사랑한 백제>라는 제목과, 표지에 적힌 '백제의 옛 절터에서 잃어버린 고대 왕국의 숨결을 느끼다'라는 문장을 보고, 당연히 백제의 '역사'를 다루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백제를 사랑한 사람의 이야기이다. 'ㅡ'


*

책 날개에 적힌 저자에 대한 설명을 일부 옮겨본다. 

-. 국립박물관 큐레이터로서 '특별전 백제', '백제의 공방' 등의 전시 업무와 국립중앙박물관 어린이박물관 개관, '한국 박물관 100년사' 편찬 사업, 조선총독부박물관 자료 정리 사업 등을 수행했다. 현재는 국립미륵사지유물전시관 관장으로 새로 건립하는 국립익산박물관(가칭)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박물관의 수장고를 발굴하여 소장품을 적극적으로 공개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전시와 교육을 활성화시키는 일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

이 책은 저자가 백제 연구자로 성장한 과정에 대한 서술로 시작해, 국립박물관 큐레이터로서 백제 특별전을 맡고, 정림사지 소조상과 능산리 목간 연구를 하고, 일제강점기에 행해진 백제사 연구를 살펴보고, 일본에서 백제 관련 연구를 하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이 책은 백제 연구자인 저자의 삶의 기록이다. 백제의 흔적과 그 역사를 다루면서도, 연구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 신선했다. 백제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지만, 연구 과정을 거쳐 '정제'된 정보만 휙휙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연구 과정을 함께 밟아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어 저자와 함께 답사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 (프롤로그...'나의 백제 예찬')

-. 백제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백제가 문화 강국이었다고 항변하지만 이 또한 선뜻 떠올리기 힘들다. 고구려는 세계 어느 나라에 내놓아도 손생이 없는 고분벽화가 있고, 신라에는 눈부신 황금의 나라답게 금관을 비롯한 화려한 금속공예품이 남아 있다. 이에 반해 백제는 공주 무령왕릉 말고는 특별히 떠오르는 것이 없고, 생각난다 한들 대부분 깨지거나 부서진 파편들뿐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역사 교사인 아내에게 백제와 관련된 책을 쓰려고 한다 했을 때 "팔리지도 않는 책을 내 주는 출판사가 있느냐"며 잔뜩 핀잔을 들어야 했다.


-. 일반인에게 백제는 삼국 중 가장 먼저 멸망한 나라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 물론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므로 삼국 통일 전쟁의 승자였던 신라가 고구려나 백제의 역사를 철저하게 말살시키고, 신라인의 관점에서 쓴 역사서만 남긴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러나 삼국 간 전쟁에서 승리한 신라가 백제와 의자왕에 대해 부정적으로 묘사했을지라도 그러한 관념이 잭제사 전체에 덧입혀져 확대재생산되는 것은 잘못이다. 백제는 고대 삼국의 한 축으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허허벌판에 서서 백제 문화의 독자성이나 국제성을 상상하고 이야기한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가? 그렇다고 부족한 볼거리를 채워 줄 상징적인 조형물이나 기념비적인 건물을 복원하자는 말은 결코 아니다. 이제 우리는 뭔가 다른 방법으로 백제를 만나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적어도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는 백제사가 아니라 구체적인 유적이나 유물을 마주하면서 거시적인 시각으로 백제를 관조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이제 백제사를 찬란하고 위대한 고대사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나와 같은 곳에서 태어나 몇 세대를 먼저 살다 간 우리 아버지나 할아버지와 나누는 이야기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 이 책은 지금까지 내가 찾아 헤맨 백제사 연구에 대한 기록이자 지금부터 내가 만들어 갈 삶에 대한 약속이다. 나의 백제 이야기가 현재를 함께 살아가는 동시대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공유될 수 있기를 바란다. 


*

중학교 때 우연한 기회로 일본 칸사이 지역에 패키지 여행을 갔었다. 오사카와 교토, 나라 지역에는 한반도와 관련된 유적들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단연 백제의 존재감은 두드러진다. 그리고 당시 가이드분이 '하찮다, 별볼일없다'라는 뜻의 일본어인 '구다라나이(くだらない)'라는 말이 백제와 관련있다고 설명했던 부분은 지금도 기억이 난다. 구다라(くだら)는 '백제'를, 나이(ない)는 '없다'는 뜻이다. 즉, 백제가 없으니(백제의 것이 아니니) 하찮다는 것이다. 일본어를 전혀 모르던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설명만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정작 한국에서 역사를 배울 때는 백제를 그렇게까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는데, 일본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것이 신기했기 때문이다. 


*

<내가 사랑한 백제>를 읽으면서, 다시 백제에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반성이라기보다는, 그냥 그렇게 하고 싶어졌다. 'ㅡ'  


[+]

후기에서 저자는 "학술 논문을 주로  써 온 내가 갑자기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글을 쓰려니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적었는데, 대중적이지 않은 주제를 쉽게 풀어낸 문장에 감탄하며 책을 읽어나간 사람으로써 배신감(!)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다. 허헛.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