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독서 - 완벽히 홀로 서는 시간
김진애 지음 / 다산북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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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독서>는 여자가 쓴, 여자를 위한, 여성 작가의 책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책 뒤표지에 적힌 설명인데, 이보다 적절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아 그대로 인용했다. 저자가 김진애 전 의원이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에 앞서 앞 날개에 적힌 저자 소개를 읽다보니 절로 입이 떡 벌어졌다. 서울대 공대 800명 동기 중 유일한 여학생, MIT 건축 석사와 도시계획 박사타임지 선정 '21세기 리더 100' 중 유일한 한국인, 민간과 공공을 넘나들며 활동한 도시건축가. 모두 저자의 이야기이다. '공대' '건축'을 포함한 삶의 궤적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남자'들의 세계에 더 익숙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저자는 <여자의 독서>라는 책을 통해, 한 순간도 여자라는 정체성을 놓은 적이 없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몇 년 전부터 한국 사회에서 '여자'에게 요구되는 역할 내지는 '여자'의 지위와 관련된 논의(?)들이 보다 활발해진 것 같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딸만 둘인 집에서 자라서인지, 친가와 외가 모두 크게 남녀 구별을 하지 않는 분위기라서인지, 그저 내가 그에 대해 크게 반감을 가지지 않는 성격이라서인지, 그와 관련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 그럴수도 있구나'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부분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지적하고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것들이라 부담없이 감사한 마음으로 접했지만, 그 중 일부는 다소 공격적인 느낌이 들어 살짝 거부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사실 <여자의 독서>라는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책장을 넘기는 것이 약간은 두려웠다. 괜시리 저자가 단호한 어조로 칼같이, 강하게, 거침없이 말을 쏟아낼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한 생각은 기우에 불과했다. 이 책에는 여자라는 정체성과 함께 살아온 저자의 독서 여정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고, 그 문체는 더할나위없이 차분하다.

 

<여자의 독서>에는 저자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만난 여성 작가들의 작품과 삶, 책 또는 문화 속에 담긴 여성의 모습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 책은 크게 8가지 코드로 구성된다.

-. 자존감: 자존감을 일깨우고 키워주는 책

-. 삶과 꿈: 어떤 사람이 될지 꿈꾸게 하는 책

-. '': 섹스와 에로스의 세계를 열어주는 책

-. 연대감: 함께하는 힘을 느끼게 해주는 책

-. 긍지: 여성의 독특한 시각을 깨우치게 되는 책

-. 용기: 불편함을 넘어서는 용기를 내게 해주는 책

-. '여신': 궁극적 지향, 원초적 원형을 찾는 책

-. 양성성: 여성성과 남성성을 넘나드는 책

 

이 책에서 저자는 <토지>의 박경리, <인간의 조건>의 한나 아렌트, <자기만의 방>의 보지니아 울프,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의 제인 제이콥스를 '불멸의 멘토'로 삼아 자존감을 찾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작은 아씨들>, <빨강머리 앤>, <제인 에어>, <캔디 캔디> 등의 작품을 통해서는 자신과 배짱이 맞는 캐릭터를 찾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침묵의 봄>의 레이첼 카슨, <희망의 밥상>의 제인 구달, <콰이어트>의 수잔 케인 등을 통해 여성의 시각이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지 이야기한다.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과 인간 여인들, 그리고 삼신할매에 이르기까지 동서양 문화에 담긴 '여자를 지키는 수호신'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풀어낸다. '여자의 독서'라는 키워드가 이렇게까지 확장될 수 있다는게 놀라울 정도다. 처음 들어보는 책과 작가도 많았고 익숙하지 않은 주제도 있었는데, 다행히도 글이 친절하게 쓰여있어서 막힘없이 읽어나갈 수 있었다. 여자를 위한 책이라고 했지만, 남자가 읽기에도 충분히 의미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책 속 문장]

(p.20)

나는 딸들이 내가 자랄 때 먹었던 '지레 겁'을 먹고 살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딸들이 건강한 분노를 느끼면서 살기를 바란다. 자랄 때 스스로를 사로잡았던 분노를 훨씬 더 긍정적인 분노로 바꿔나가기를 바란다. 어리석었던 실수를 덜 저지르고 미숙했던 시행착오를 덜 겪기를 바란다. 훨씬 더 멋진 실수를 저지르고 훨씬 더 근사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훨씬 더 커지기를 바란다.

 

(p.378)

우리 사회는 '여자라서, 여자여서'뿐 아니라 '남자라서, 남자여서'도 만만찮게 압력이 되는 사회다. 구분하고 규정하고 억제하고 옥죄는 문화가 대세다. 왜 우리 스스로 이런 구속을 만들어서 답답해하고 힘들어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가부장사회, 남성우대사회는 곧 수많은 남자들에게도 족쇄가 되기 십상인데 말이다. 부디 자유로워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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