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의 배신 - 베테랑 번역가도 몰랐던 원어민의 영단어 사용법
박산호 지음 / 유유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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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더라인 아카데미에서 진행된 박산호 번역가님의 특강에 참석했을 때, 영어 단어에 대한 책을 쓰고 있다고 살짝 언급하셨는데 그 책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유유 출판사를 통해 출간된 <단어의 배신>이다. 이 책은 '베테랑 번역가도 몰랐던 원어민의 영단어 사용법'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물론 나는 아직 영어의 근본을 찾아 바둥거리는 중이기에, 영어를 번역하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래서 영단어를 공부한다는 느낌으로 이 책을 펼쳤고, 애초에 아는게 없기에 배신감을 느낄 일도 없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두 번째 단어인 agree를 만나면서 바로 생각이 달라졌다. 미천한 영어 실력이지만, 나도 agree는 안다. '동의하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런 agree '합의하다' '몸에 맞다'라는 뜻이 있다니. 참 빠르게도 배신감을 느꼈다.

 

<단어의 배신>은 단순히 한 단어가 지닌 다양한 뜻을 나열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뜻으로 사용되는 경우의 예문을 제시해주는 친절한 책이다. 일례로 agree'몸에 맞다'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경우의 예문으로는, "I love shrimps, but unfortunately they don't agree with me."가 제시되어 있고, "나는 새우를 좋아하지만 아쉽게도 내 체질에는 맞지 않아."라는 뜻까지 적혀있다. 게다가 단어가 생겨난 문화적 또는 역사적 배경, 그리고 단어의 어원에 대한 설명도 담겨 있어 지루할 틈 없이 쭉쭉 읽어나갈 수 있었다.

 

(p.25)

세계 최초의 은행(bank) 4,000년 전 바빌로니아에 있던 신전 은행이라고 합니다. 신전이 은행이었다고하니 참 안 어울리죠? 돈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신성한 곳에서 최초의 은행 업무가 시작되었다니요. 요즘같이 돈을 숭배하는 세상에서는 은행이 신전이라고 해도 크게 과장한 말이 아닐 듯합니다.

고대의 신전 안마당에는 긴 탁자와 의자가 놓여 있었는데 그 위에 사람들이 담보로 가져온 물건을 올려놓고 거래를 했다고 합니다. bank는 탁자 또는 의자를 뜻하는 banco에서 유래한 단어지요. bench(벤치) bankrupt(파산) 역시 같은 어원에서 나왔습니다. 파산해서 더 이상 은행 거래를 할 수 없게 된 사람은 자신의 의자를 부수는 것으로 파산 상태를 선언했다고 합니다.

 

<단어의 배신>에는 cat, egg, eye, green, grey, house, jam, sat, tea 등 얼핏 보기엔 너무 쉽고, 그 뜻이 명확해보이는 단어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특정 단어가 한 가지 뜻으로만 해석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쉬운 단어일수록 더 조심해야 한다. <단어의 배신>은 책 자체가 가볍고, 한 단어에 대한 설명도 단 두 페이지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부담없이 편하게 읽을 수 있다. 그리고 <단어의 배신>이라는 제목과 달리, 책장을 넘길수록 영단어가 지닌 매력에 더 빠져들게 되는 신기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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