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시험 - 대한민국을 바꾸는 교육 혁명의 시작
이혜정 지음 / 다산4.0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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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영어를 가르치는 친구 덕분에 수능 기출 문제를 풀어본 적이 있다. 당시 토익을 공부하던 참이라, 재미삼아 한 번 풀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문제를 뽑아달라고 부탁했었다. 물론 결과는 예상대로 처참했다. 그런데 토익 문제의 경우, 해설을 보면 어느정도 이해가 되는데 반해, 수능 영어는 친구에게 설명을 들어도 뭔 소린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애초에 문제를 풀면서도 문장이 읽힌다기 보다는, 내가 의미를 알고 있는 단어들을 뽑아낸 다음에 알아서 조합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내 영어 실력이 부족한 탓도 있겠지만, 지문 자체가 참 불친절하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의 고등학생들은 그런 문제를 풀기 위해 공부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심난해졌다. 아마 내가 수능을 봤을 당시에도 그랬을 테지만, 더 심해진 것 같았다. 예전에 <문제적 남자>라는 방송에 미국 국적의 방송인 타일러 라쉬가 수능 외국어 영역 문제를 보고 황당해하는 장면이 나온 적이 있다. 사실 타일러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시험을 위한 영어가 잘못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리고 이는 비단 외국어인 영어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문학, 수학, 과학, 사회 등 시험으로 줄을 세우는 모든 과목에 해당한다. 다만 평가를 위해서는 시험을 봐야 하고, 하루 아침에 교육 제도를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시험>에서는 지금이 바로 한국의 시험을 바꿀 최적기라고 말한다. 오늘날 한국에서는 나날이 낮아지는 출산률이 문제가 되고 있다. 아이를 낳지 않는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되는 것이 경제적 부담이고, 그 중에서도 자녀의 사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하지만 그런 덕분에 한 학급의 학생 수가 이전에 비해 크게 줄었고, 비판적 창의적 수업이 가능한 수준이 되었다. 그와 더불어 대입에서 수시전형이 차지하는 비율이 80퍼센트에 육박할 정도로 정성평가가 확대되었고, 4차 산업 혁명의 쓰나미가 덮쳐오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새로운 시험이 대한민국을 새롭게 도약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의 시험>은 단순히 문제를 제기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저자의 전작인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가 제기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저자는 새로운 대안이자 새로운 평가 기준으로 IB와 IGCSE라는 모델을 제시한다. 책에는 이들 시험의 예시 문제가 실려 있는데, 문학이라면 수업 중에 공부한 작품을 비교/분석하도록, 역사라면 특정 사건이 미친 영향을 서술하도록, 외국어라면 주어진 주제에 맞게 글을 작성하도록 한다. 무엇하나 단순 암기로 풀 수 있는 문제는 없고, 모두 깊이 생각해야만 제대로 된 답안지를 작성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유형의 시험 문제가 더 까다롭다. 하지만 열심히 암기하고 높은 점수를 받아도 공부한 본인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는 시험은 사실 의미가 없다. 힘들지언정 뭐라도 남고, 생각을 요구하는 시험이 필요하다는 것은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이왕이면 정책을 바꿀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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