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한일경제전쟁
문준선 지음 / 스마트북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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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부장'이 뭔가 했는데, 소재/부품/장비의 앞 글자를 따서 부르는 말이었다. 'ㅁ')! 경제 관련 뉴스를 잘 안 보다 보니 소부장이라는 말 자체가 생소했는데, 다행히 책 서두에 소재/부품/장비에 대한 설명이 있어서 공부하는 기분으로 열심히 읽고 책장을 넘겼다. 리뷰 작성에 앞서 네이버에서 검색을 해보니, '소부장'이라는 말이 들어간 경제/정책 관련 뉴스가 주르륵 나왔다. 그 가운데 지식인에서 '소부장' 뜻을 묻는 질문이 있어서 반갑기도(?) 했다. ㅋㅋㅋ.



(p.25)

소재.부품이란 테슬라의 복합소재, 폴더블 폰의 힌지, 롤러블TV의 폴리이미드와 같이 상품의 제조에 사용되는 원재료 또는 중간생산물을 말하며, 장비란 이러한 소재.부품을 생산하거나, 소재.부품을 사용하여 제품을 생산하는 장치 또는 설비를 말한다(소재.부품.장비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특별조치법 제2조). 소부장은 완제품에 녹아들어 우리 눈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으며 인류의 삶을 좀 더 윤택하고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이러한 소재, 부품, 장비는 오래전부터 있던 개념이지만, 이를 묶어 하나의 산업군으로 보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2001년 정부는 '부품.소재 전문기업 등의 육성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면서 부품과 소재를 묶어 부품소재 산업으로 정의했다. 2015년에는 부품보다 소재에 무게를 두어 '부품.소재 특별법'을 '소재.부품 특별법'으로 개정했고, 자연스럽게 '부품소재'에서 '소재부품'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일본의 수출규제 이후에는 특별법 전체를 개정해서 정책 대상을 소재.부품에서 장비산업까지 확대했고, 최근에는 소재부품장비, 약칭 '소부장'으로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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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일본이 소부장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의 특수성 때문이라는 기존의 시각에 의문을 표시한다. 전쟁, 장인정신, 장수기업, 첨단산업을 비롯한 일본적 특수성을 강조하는 기존의 설명으로는 일본 소부장 산업의 성장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소부장은 한국의 미래 성장 동력 중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 소부장 경쟁력의 원천을 찾는 것은, 정부와 관련 기업이 적절한 전략을 수립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p.37)

전쟁, 장인정신, 장수기업과 같은 일본적 특수성을 강조하는 기존의 시각은 자칫 일본과 같은 특수한 역사적 경험과 전통이 없는 국가는 산업발전이 어렵다거나, 일본과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세기를 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왜곡된 인식을 불러올 수 있다.

또한 기존의 시각으로는 일본 기업의 탄생과 성장과정은 설명할 수 있겠지만, '잃어버린 20년'이라고 불리는 일본 제조업의 성숙 및 쇠퇴과정을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즉 1990년대 이후 일본 제조업의 침체는 군수산업에 대한 투자 미흡, 장인정신의 후퇴, 장수기업의 소멸 때문이 아니라, 일본 경제사회가 역동성보다는 안정성을 선택하고, 도전보다는 안정을 선호하며, 비주류들이 설 자리를 잃었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정확한 분석과 인식을 갖추어야만 비로소 우리 소부장 산업을 키우기 위한 적합한 처방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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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지난해 일본이 우리나라에 대해 전략물자 3개 품목에 대한 수출을 규제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감정적으로 분노하는 데 그쳤던 것 같다. 일본이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해 보복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고,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더 알아보지는 않았다. 책에서 저자가 일본의 전략물자 수출규제 결정이 재도약을 노리는 일본의 전략적 결정일 수 있다고 지적하는 부분을 읽으면서,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 들었다...;ㅁ; 다행히 수출규제 조치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소부장 국산화의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소부장 산업에서 일본과의 물밑 경쟁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며 장기전에 대비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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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한국 사람들에게 복잡미묘한 감정을 일으키는 나라이다. 역사적으로는 깊은 감정의 골을 가지고 있지만, 문화적으로는 가깝기도 하고, 정말 가까우면서도 먼 나라이다. 물론 사람마다 시각이 다를 테지만, 경제적 측면에서는 일본이 한국보다 우위에 있다는 인식이 일반적인 것 같다. 일본의 수출규제가 있었을 때도, 한국의 관련 산업이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렸었다. 그래서 일본을 넘을 수 없다고 여기는 자학적 경제관을 버리라는 저자의 말이 반가우면서도 신선했다. 그리고 실제로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일본과 한국의 기술 격차는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p.136)

일제 치하 대만의 항일 무장봉기 사건을 다룬 영화 <시디그 발레>를 보자. 영화에서 일제는 시디그 부족의 족장들을 일본에 초대하여 불야성인 도시와 거대한 군함, 대포를 추장들에게 보여준다. 이후 자기 부족으로 돌아간 추장들은 일제에 저항을 포기한다. 젊은이들을 주저앉히고 제국을 동경하라고 설득한다. 그리고 이런 길들임은 마치 전염병처럼 감염되고 퍼진다.


자학적 자기인식을 심어놓는 이런 통치방식은 값싸고 효과적이다. 스스로 무릎 꿇게 하는 제국주의의 잔재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한일 격차 50년 논쟁의 이면에는 우리도 모르는 이런 '자학적 경제관'이 자리 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거대한 내수 시장을 활용하여 자신들만의 독특한 거래관행과 시스템을 구축해온 결과 글로벌화에 50년이 걸린 일본, 야심적 목표와 글로벌 지향성으로 13년 만에 끝낸 독일. 어느 길을 택해서 어떻게 갈 것인지는 이제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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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한일경제전쟁>에는 일본의 다양한 소부장 업체들의 사례들이 소개되어 있다. 소부장 업체들은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지 않다 보니,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업체가 대부분이었다. 해당 분야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둔 업체들인데도 이렇게까지 생소하다는 게 신기했다. 소부장 분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에 세부적인 내용을 소화하지 못하고 큰 틀에서만 책을 읽은 것 같아 아쉽다. 해당 분야의 경제 뉴스를 챙겨 본 뒤에 다시 이 책을 읽으면 또 다른 느낌으로 책을 읽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포스트 한일경제전쟁>은 일본의 소부장 업체들의 사례를 알차게 모아놓은 책이라서, 저자의 바람대로 소부장 분야의 중소기업 관계자들에게 혁신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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