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의 목소리 - 일본인의 눈으로 바라본 촛불혁명 134일의 기록
다카기 노조무 지음, 김혜영 옮김 / 21세기북스 / 201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수많은 촛불이 광화문 일대를 환하게 비춘 것이 벌써 재작년의 일이다. 2017년 3월 10일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당했고, 그해 5월의 장미 대선을 거쳐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됐다.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심판이 내려지던 순간, 사무실 곳곳에서 들려오던 안도의 한숨 소리는 지금도 기억이 난다. 국정농단 논란, 전국적으로 이뤄진 촛불 시위, 대통령 탄핵 등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 맞는지 긴가민가한 시간들이 흘러갔고, 어느새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지도 1년이 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촛불이 만든 대통령이라고 말하곤 한다. <광장의 목소리>는 재작년 말 환하게 빛났던 촛불의 모습을 다시 상기해볼 수 있는 책이다. 


*

<광장의 목소리>는 촛불집회 134일의 기록을 담은 책이다. 눈에 띄는 것은 저자가 일본인이라는 점이다. 한국 사람이라고 모두 똑같은 시선으로 촛불집회를 바라보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인의 눈에 비친 촛불혁명의 모습도 큰 맥락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저자는 촛불집회의 모습을 군더더기없이 책에 담았다. 200쪽이 조금 넘는 분량의 책인데 오며가며 읽으니 금새 읽어버렸다.  


(p.4_들어가며)

서울에 사는 나는 2017년 3월 10일부터 오래 묵혀두었던 일을 처리하러 잠시 일본에 가 있었다.

그날 시내를 달리는 택시 안에서 텔레비전 뉴스를 보니, 한국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자막에 나온 문구는 '박근혜를 파면한다'였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울컥 치솟았다. 만약 헌법재판소 앞에서 이 소식을 들었다면, 이튿날 광화문광장에 나갔다면, 옆에 있는 사람과 손을 맞잡고 부등켜안으며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른다. 실로 역사에 남을 순간이었다.  


   



*

<광장의 목소리> 제1부는 '촛불혁명 134일의 기록'으로, 제2부는 '촛불집회 참가자들의 증언'으로 구성되어 있다. 촛불의 탄생부터 확산까지의 과정이 깔끔하게 적혀있어서, 머릿속에 어수선하게 흩어져있던 일련의 사건들이 이제서야 한 줄기로 엮인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촛불집회 참가자들의 증언 부분은 당시의 상황을 좀 더 깊게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하는 시간을 주었다. 'ㅡ'



*

내가 기억하는 촛불 집회의 모습은 시위라기보다는 문화제에 가까웠다. 모두 한 목소리로 구호를 외쳤는데, 그 목소리는 공격적이라기 보다는 '컸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개개인이 날을 새우기보다는, 서로가 서로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는데 집중하는 느낌이었다. <광장이 목소리> 책을 읽으면서 광화문에서 보낸 시간의 기억이 다시 되살아나서 괜시리 뭉클해졌다. 


*

(p.25_프롤로그::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모르는 얼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눈이 마주치면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졌다. 청와대에 틀어박힌 대통령과 해외에서 도망 다니는 '비선 실세'를 향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자신들의 분노를 보여주기라도 하듯 3만 개의 촛불이 켜졌다. 세찬 바람이 불어도 결코 꺼지지 않는, 영혼이 담긴 촛불이었다…….


*

(p.69_11월 26일 5차 촛불집회::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200만의 함성과 200만의 촛불)

얼마 안 있어 광장으로 이어지는 대로가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한 흥분과 감동에 휩싸였다. 무대에 선 사회자가 1분간 소등을 요청했다. 8시가 조금 넘은 시간, 빛의 바다를 이루었던 광화문광장이 순식간에 어둠으로 변했다. 짧은 침묵 이후, "박근혜는 퇴진하라!"라는 외침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그 목소리는 처음에는 차분하게, 그러나 점차 강도를 높여가며 수없이 반복되었다. 그와 동시에 광장의 빛의 되돌아왔다. 손쉽게 점등할 수 있는 LED의 위력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스마트폰 화면에 띄운 촛불도 흔들거리고 있었다. 이윽고 사람들은 반짝이는 빛을 손에 들고서 다 같이 어깨를 흔들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직이 퍼져나가던 노랫소리는 어느새 서울의 밤공기를 뒤흔들 듯 메아리쳤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

광화문에서 들었던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라는 노래를 떠올리면 기분이 묘해진다. 2016년 말의 촛불 집회는, 태어나 처음으로, 힘을 모아 함께 행동하는 대한민국 국민의 일원으로 보낸 시간이었다. 추운 날씨에 광화문 길거리에서 촛불을 바라보며, 정치에 무관심했던 지난 날을 후회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또 다시 정치에 무심해진 것 같아 반성하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