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미래 보고서 - 빚으로 산 성장의 덫, 그 너머 희망을 찾아서
마루야마 슌이치.NHK 다큐멘터리 제작팀 지음, 김윤경 옮김 / 다산북스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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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과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가끔씩 경제 신문을 뒤적거리지만 여전히 경제학은 어렵기만 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경제학 자체에 흥미가 있다기 보다는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친해지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시작이 어찌되었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경제 시스템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임은 분명하다. 특히 사회에 나와 직접 경제 활동을 하면서 그 생각은 더욱 커지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소비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가능한 많은 자본을 축적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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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가끔씩, "꼭 그래야 하나?"라는 생각이 고개를 든다. 바꿔 말하면,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가 지향하는 방향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이 떠오르는 것이다. 경제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서도, 자본주의의 부작용 내지는 병폐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존재한다는 것은 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자본주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직접 답할 수는 없지만 궁금하기는 하다. 그래서 집어든 책이 <자본주의 미래보고서>이다. <자본주의 미래보고서>는 일본 NHK 다큐멘터리 <욕망의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한 책으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 체코 정부 최연소 경제 자문으로 활동했던 '토마스 세들라체크', 실리콘밸리 벤처투자가 '스콧 스탠퍼드'와의 대담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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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심화된 불평등

...미래를 담보 잡은 자유라는 욕망의 실체 

(현대 경제학의 거장 조지프 스티글리츠)


[제2장] 빚으로 산 성장의 대가

...성장이 필요 없는 자본주의를 상상하라

(유럽 최연소 경제 자문 토마스 세들라체크)


[제3장] 테크놀로지 시대, 노동의 종말

...4차 산업혁명,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실리콜벨리의 투자가 스콧 스탠퍼드)


[특별 대담] GDP 지상주의를 넘어서

(토마스 세들라체크-고바야시 요시미쓰)



"사람들이 그 정도로 여유가 없다면, 

대체 부유함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걸까?"

-토마스 세들라체크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Eugene Stiglitz)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경제학자로 전 세계를 누비며 불평등과 맞서 싸우는 현대 경제학의 거장이다. 미국 정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과 세계은행 부총재를 역임했다. 저서로 <불평등의 대가>, <거대한 불평등>, <GDP는 틀렸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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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가 저성장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지금, 스티글리츠는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으로 불평등 문제를 지적한다. 빈곤층은 소득 대부분을 소비에 사용하는 상황에 처해있는데 반해, 부유층은 소득에서 소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낮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돈을 번다. 또한 스티글리츠는 지금의 경제 상황을 바꾸기 위해,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애덤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발언 역시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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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은 오늘날 자본주의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이다. 그리고, 스티글리츠는 자신이 불평등 문제나 시장경제의 국제 격차 문제에 대한 책을 펴내는 것이 사회를 보다 정상적으로 기능하게끔 만드는 데 꼭 필요하다고 강하게 믿고 있다고 말한다.  


(p.48)

2008년 세계금융위기 당시를 한번 생각해 봅시다. 정작 위기를 초래했던 부패한 은행가들은 막대한 정부 보조금을 손에 넣은 채 도망쳤습니다. 반면에 수없이 많은 시민들의 생활은 파탄이 났습니다. 시민들은 그런 상황을 방치한 미국 정치권에 강한 분노를 드러냈지요. 그 가장 대표적인 움직임이 바로 월스트리트 시위였습니다. 

하지만 시장이 정상 기능을 다할 수 있는 방법을 상세하게 연구한 경제학자도 있습니다. 부의 독점을 방지하고, 시민들이 과도한 위험을 무릅쓰거나 약탈적 대출을 받는 것을 피해, 금융시장에 만연한 부정 방지 대책을 모색하는 연구들 말이지요. 물론 거품이 되풀이해서 발생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는 있어도, 그것을 완전히 사라지게 하는 일은 불가능할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경제가 커다란 위기에 빠질 위험성을 줄이고 위기 강도를 억제해 파멸에 내몰리는 피해자를 최소화할 수는 있겠지요.

   




::토마스 세들라체크(Tomas Sedlacek)

체코의 경제학자로 불과 24세의 나이에 대통령 경제 자문으로 활약했고 체코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자본주의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 시선으로 물질적 성장만이 아닌 문화적/인간 중심적 성장을 촉구하고 있다. 저서로 <선악의 경제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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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들라체크는 경제의 호황과 불황을 심리학이나 정신 의학에서 말하는 조증과 울증에 빗대어 설명하는 등 경제학 내용을 다양한 분야와 연결지어 쉽게 말해준다. 특히 케인스의 미인 대회 투표의 개념과 주식 시장을 묶어서 설명한 부분이 인상깊었다. 미인 대회 투표는 20세기의 대표적 경제학자인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제시한 비유라고 하는데 처음 들어봤다. ㅇㅅㅇ. 


(p.107)

케인스의 미인 대회 비유에는 아주 많은 암시가 있어요. 첫째, 주식 시장의 본질을 무척 잘 담고 있지요. 주식 시장에서 사람들이 '투표'하는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기업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기업입니다.

둘째,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경쟁으로 어느 누구도 좋아하지 않는 여성이 우승할 수도 있다는 거죠.

셋째, 저 같은 사람은 이 게임에서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잘 이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미인대회에서는 심사위원들을 관찰하는 것이 더 유리한 전략이에요. 그 결과 우리는 '미'라고 여겨지는 대상의 거품을 창출하게 되죠. 우승자를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어라? 내 취향이 별난 건가? 내가 이상한 걸까?'하고 불안해집니다.

마지막으로 고정관념이 시대를 초월해 영원히 반향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입니다. 만약 시간이 흘러서 모두의 취향이 콧날이 오뚝한 여성으로 바뀐다고 해도, 그 사실이 표면화될 수 있는 조정 매커니즘은 없습니다. 우뚝한 코가 새로운 미의 기준으로서 사람들의 고정관념으로 자리 잡지 않는 한, 우리는 기존의 고정 관념에 얽매여 자신의 미의 기준과 다르지만 누가 봐도 공감할만하다고 생각되는 여성에게 투표하기 때문이지요.

다시 말해 이러한 질서에서는 실력이 가장 좋은 기업이라도 얼마든지 실패할 수 있습니다. 왜곡된 체계는 늘 왜곡된 결과를 초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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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 문제와 관련해 언급된  개념인 '황금 천장설'도 기억에 남는다. 일본의 경제가 더이상 성장하지 못하는 것은, 누구나 아이패드를 두 대씩 갖고 있기 때문에 누가 한 대를 공짜로 준다고 해도 누구도 원하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일본을 포함해 저성장을 겪고 있는 나라들이 '황금 천장'에 도달한 것이라면, 그것을 왜 나쁘다고 생각하느냐고 세들라체크는 묻는다. 경제성장이 둔화되었다면, 문화 예술이나 정신적인 측면 등 그 밖의 분야에서 성장하면 된다는 것이다. 


(p.128)

만약 제 분석과 비유가 올바르다면, 즉 음식은 남아도는데 식욕이 부족한 점이 문제라면, 어째서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요리를 더 많이 만들고 더 효율적으로 만드는 것이 될까요? 왜 요리를 그만두지 않는 거죠? 요리하던 손을 멈추고 느긋하게 여유를 즐기면서 쉬어도 되잖아요?

   




::스콧 스탠퍼드(Scott Stanford)

셰르파캐피탈 CEO. 미국의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에서 일하다 2013년 벤처 투자 기업 셰르파캐피탈을 설립했다. 우버, 에어비앤비, 먼처리 등 떠오르는 테크놀로지 기반 업체에 투자해 잇달아 큰 성공을 이끌면서 세계적 주목을 받는 투자가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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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기존과 다른 비즈니스 모델을 내세워, 이미 존재하던 시장을 위협하는 업체들이 곳곳에서 생겨나고 있다. 일례로 우버는 택시 시장을, 에어비앤비는 호텔 시장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우버와 같은 '주문형(on-demand)' 서비스 업체들은 자사를 서비스 공급자와 수요자를 이어주는 '플랫폼'으로 정의하고 있다. 기업과 노동자 사이의 '고용' 관계가 사라지는 것이다. 이러한 모델이 바람직하게 작동할 경우, 노동자들은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수입을 올릴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고용이라는 계약 관계가 사라진다는 것은, 노동자들을 보호할 안전 장치가 사라짐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게다가 자율주행과 같은 인공지능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궁극적으로는 사람이 행하는 '노동'이 사라질 수도 있다.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노동의 대가로 돈을 받고, 그 돈으로 사회가 돌아간다. 스탠퍼드 역시 노동이 사라진 미래에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사회 시스템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한다. 


(p.228)

현재 노동인구의 약 절반이 일하지 않게 된다면 지금과는 다른 사회 시스템이 필요하겠지요. 지금의 자본주의는 학생이나 은퇴한 사람 이외의 성인은 반드시 일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으니까요. 일하지 않는 사람이 절반이나 되는 사회에는 무언가 새로운 사회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답은 모르겠어요. 사회주의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시스템이 시도되어 왔습니다만, 새로운 시스템은 그것들의 하이브리드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조심해야 할 것은 숙고한 끝에 그저 사회주의로 옮겨가는 일입니다.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성공한 사람 또는 일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부양해야 합니다. 그런 구조는 인간의 본성에 반할뿐더러 지속 가능성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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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를 살고 있지만, 사실 자본주의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는 않다. 알아두고는 싶지만, 본격적으로 파고들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미래보고서> 책을 펼칠 때도, 내용을 이해할 수나 있을까 싶어서 적잖이 걱정을 했다. 다행히 대담 형식으로 이뤄진 책이라 일반 서술형 책에 비해 편하게 읽어나갈 수 있었고, 내용도 나름 쉽게 풀어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ㅅ'. 약 이틀 동안 집에서, 카페에서, 이동 중에 틈틈이 읽었는데, 책을 읽다가 주변을 둘러보면 문득 자본주의 사회의 한 가운데 살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어서 신기하기도 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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