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그들이 보이는지 봐주겠나?""누구를 보란 말이오?""잘 가게! 잘들 가!" 그는 다시 떠나면서 대답했다. "아 참! 자네들에게 몇 마디 충고할 생각이었는데. 하지만 신경 쓰지 말게. 아무래도 상관없어. 모두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야. 오늘 아침은 얼어붙을 것처럼 춥지 않나? 잘 가게. 당분간은 만나지 못할 거야. 심판의 날이 오기 전에는." 이 아리송한 말과 함께 그는 마침내 떠났다. 나는 그의 건방진 인사말에 잠시 멍해지는 것 같았다.
누구나 알고 있다시피, 한 집안의 살림을 꾸리는 데에도 얼마나 많은 가재도구가 필요한지 모른다. 침대, 냄비, 포크와 나이프, 삽과 부젓가락, 냅킨, 호두까기, 기타 등등. 식료품점과 과일행상, 의사, 빵집, 은행 등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망망대해에서 3년 동안 생활해야 하는 포경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런 이유로 고래잡이 항해는 반가운 일이었다. 이제 경이의 세계로 통하는 거대한 수문이 열렸다. 목표를 향해 나를 내몬 멋진 공상 속에서 둘씩 짝을 지어 내 영혼의 깊은 곳으로 헤엄쳐 들어오는 고래의 끝없는 행렬이 보였다. 그리고 그 행렬 한복판에, 하늘로 우뚝 솟은 눈 덮인 산처럼 두건을 쓴 거대한 유령이 하나 떠다니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고상한 비극에서 당당한 역할을 맡거나 우아한 희극에서 짧고 쉬운 역할을 맡거나 익살극에서 유쾌한 광대 역할을 맡는데, ‘운명’이라는 무대감독이 왜 나한테는 고래잡이 항해의 이 초라한 역할을 맡겼는지, 그 정확한 이유는 나도 알 수 없다. 정확히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나도 알 수 없지만, 이제 와서 모든 상황을 돌이켜보면 교활하게도 다양하게 변장하고 내 앞에 나타나 그 역할을 맡게 한 여러 가지 동기와 원인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게다가 그것들은 나를 속여서, 내가 확고부동한 자유의지와 뛰어난 판단력으로 그 역할을 선택했다는 망상에 빠뜨렸다.
그러나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돌아가도, 재미있는 일이 아무리 널려 있어도, 글쓰기에는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꿈을 꿔야 하고 기억해야 하며 생각해야 하고 상상해야 한다. 시간 낭비라고 느껴지는 일도 자주 해야 한다. 적막이 있어야 하고 고독이 있어야 한다. 주위가 난잡해지는 상황도, 자신이 무얼 하는지 모르는 상황도 아무렇지 않게 견뎌야 한다. 퇴고를 해야 하며, 자신의 이야기와 그 이야기의 진실, 그 이야기의 의미를 찾기 위해 발버둥 쳐야 한다. 회의와 두려움과 의심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게다가 글을 쓰는 데에는 지름길도 없고 왕도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