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의무를 묻는다 - 살아가면서 읽는 사회 교과서
이한 지음 / 뜨인돌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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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무를 다하자고 하지 않고 의무를 묻고 있다. 단순히 착하게 살자는 것이 아니라, 바르게 살자는 것이 아니라, 옳음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를 해 보자는 것이다.

 명료하지 않은 용어의 정의와 사용은 개념의 혼란을 가져온다. 윤리, 도덕, 정의, 의무, 권리와 같은 용어를 사용함에 있어 그 '감각'과 혼용하여 사용하여 의미를 모호하게 만들어버리는 경우가 잦다. 또한 우리 사회 통념상의 윤리는 주먹구구 공리주의, 인습, 자연주의, 심리적 의무감 등이 모호하게 뒤섞여 있는 개념이다. 이 때문인지 개인적 미덕의 영역과 사회적 정의의 영역은 서로 다른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 두 가지를 쉽게 혼동한다. 윤리 자체와 윤리감은 다른 것이며 의무감을 느끼는 것이 곧 의무가 되는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또 시대와 지역에 따른 그 사회의 규범과 인습을 따르는 것이 윤리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를 윤리 그 자체와 동일시하여, 결국 윤리적 상대주의라는 결론으로 빠지는 오류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마이클 샌델이 국내에서 인기를 끄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공리주의 혹은 다소 변형된 공리주의 계열의 논리는 태생적으로 독소를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윤리관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쉽게 공감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쾌락 공리주의든 질적 공리주의든 덕 공리주의든 간에 옳음을 좋음에 기반하게끔 하므로, 그 좋음을 따지다보면 결국 주먹구구 계산, 인습, 숙고되지 않은 본능적 윤리 감각, 사회 통념, 자연주의, 특정 견해를 지지하는 계급의 권력과 구성원에 수에 따른 단순 힘싸움으로 흐르게 되어버리는 위험을 본질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신정 국가에서는 특정 신앙의 견해라는 절대적인 좋음을 어린 양같은 백성들에게 강요할 수 있겠으나, 민주공화국의 시민들은 그들 스스로 무엇이 좋음인지 숙고하고 결정하여 인생을 설계할 권한이 있으며, 실제로 각기 좋음에 대한 가치관이 상이하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어떻게 하면 각 구성원들을 공정하게 대우할 수 있을지, 납득할 수 있고 정의롭다고 할 수 있는 권리와 의무의 구성과 기본 전제 규칙은 어떤 식으로 세워져야 할 지에 대한 고민이 자유주의의 과제이다. 몸에 좋은 음식이라고 친구에게 강제로 먹일 수 없는 이치와 같이, 옳음을 좋음으로부터 분리시켜 좋음에 기반하지 않도록 하고, 옳음을 좋음에 우선하게끔 하는 원칙이 칸트, 롤스 계열의 도덕철학의 전제이다. 이처럼 자유주의는 세간의 통념과는 달리, 자유냐 평등이냐 하는 비논리적인 이분법에 따라 부자 감세와 복지의 축소를 주장하는 이론이 아니라, 오히려 그 구성원을 수단으로 대우하지 않고 목적으로 대우하여 공리주의의 덫으로부터 인간의 마땅하고 정당한 권리와 의무를 흔들림 없이 공정하게 규정하고 보호할 수 있는 이론이다.  

 이한의 너의 의무를 묻는다는 칸트-롤스의 자유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윤리와 의무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논한다. 그리고 의무의 본질과 원리, 옳음의 근거에 대해 다각도로 살펴보는 길에 여러 가지 예시가 제시된다. 이러한 예시들은 각 사안 자체에 초점을 두지 않고, 추상적이고 보다 심층적인 원리에 대한 구체적 프로토타입 구현으로서 제시되는 것으로, 각 사안에 함몰되기보다 그 저변에 깔린 윤리학적 아이디어에 주의를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의무와 권리는 동전의 양 면과도 같다는 부분은 특히 인상적인데, 자유와 평등을 이분화하여 자유가 중요하냐 평등이 중요하냐 논하는 것이 넌센스이듯, 먼저 의무를 다 하고 그 다음 권리를 찾으라는 통속적인 표현 또한 넌센스이다. 구성원의 정당한 권리와 의무가 토대 위에 있는 상황에서 그 권리와 의무를 침해하지 않고 나아가 지키는 것이 바로 의무가 된다.

 또한 민주주의와 정치 제도에 대한 고민 또한 돋보인다. 민주주의는 이미 완성된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발전해 가는 단계에 있으므로, 현 대의 민주주의 질서를 보다 발전시키는 방향의 대안 제도에 대해 공부할 필요성을 보인 후 심의 민주주의 제도를 소개한다. 이는 많은 시민들이 정치 무관심에 빠지는 현상을 놓고 통속적인 비판과 정치 의식 함양만을 외치지 않고, 복잡한 현대 사회의 정책 결정에 있어 모든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없고 정치에 들일 시간과 비용이 한정되어 있다는 현실을 냉정하게 인정하면서도, 엘리티즘과 포퓰리즘을 극복하는 시민 정치 참여 형태를 고민하였다는 점에서 신선하다.  

 전반적으로 친절한 어조와 핵심 아이디어의 적절한 비유가 인상적이다. 읽기 난해한 책이 아니면서도 몇 번이고 다시 읽어도 읽을 때마다 새롭게 생각할 거리가 보이는 것은 일견 단순하고 명료해보이는 논지 밑에 깔린 논리 구성이 치밀하고 깊기 때문일 것이다. 부담스럽지 않은 두께이지만 내용이 묵직하여 두고두고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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